[특별기고-강갑수 목포시 노인회 자문위원] 도덕성(道德性)을 회복(回復)하고 정의(正意)를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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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강갑수 목포시 노인회 자문위원] 도덕성(道德性)을 회복(回復)하고 정의(正意)를 살리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4.0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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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갑수 (전 목포시 교육청 학무과장, 전 목포시 노인대학 학장, 전 전라남도 제21대 교육 삼락회 회장, 현 목포시 노인회 자문위원)

[목포시민신문] 1. 도덕성의 실종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으로 실수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한다. 혹은 몰라서 혹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과오를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정불의(不正不義)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기 또는 자기소속의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공공연히 범행한다는 것이다.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너무나 뻔뻔스럽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라고 우겨대니 이것이 바로 내로남불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류의 사람들은 법망도 교묘히 잘 빠져 나간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있다. 국회의원은 상류층이다.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층이다.

연봉으로 봐서도 최고위층임이 틀림없다. 2017년도에 고용정보원에서 우리나라 각종 직업중 연봉이 많은 직종을 발표했는데 국회의원의 연봉이 1위였다고 한다.

2018년도에는 14천만원, 2019년도에는 15176원이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국회의원 연봉이 1위였고 2위가 대한민국 국회의원 연봉이었다. 나라의 면적 크기로는 미국의 1개 주만큼인데 우리나라의 국가예산이 그만큼 풍족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게다가 국회의원 1명에 딸린 보좌관이 9명이나 된다. 이들에게도 보수는 국고 지급이다. 국회의원의 세비 인상권도 셀프다. 국회의원의 연봉인상권은 아무도 제지하지 못한다.

지난 212일에 정직한 후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3선의 거짓말쟁이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역이 이번에 4선에 도전하는데 이번에도 그 거짓말이 통할지.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를 보는 듯하다. 도덕성의 실종상태였다. 대한민국 제20대 국회가 부도덕의 전형이었다. 국가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당만을 챙기려는 이전투구였으니 세령의 동물국회가 틀림없어 보였다. 물론 정치인은 당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민주정치란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도 하고 때로는 조금 손해도 보고 져 주기도 하면서 타협하는 정치이다. 노련한 정치가는 모두 이러한 스타일이었다.

그 결과는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생활에 보탬을 가져다주는 정치 국민은 지금 그런 정치를 원한다.

다수당이라고 밀어 붙이는 정치는 제로섬 게임(zero-sum-game)이고 집단이기주의이다.

여와 야의 국정사안이 같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허나 국회의원이라면 국회 안에서 싸워야지 국회 밖으로 나가서 싸우려는 것은 국회의원의 기본이 아니다.

국회 안에서 서로 대립하고 싸우면서도 변증법적 발전을 통한 상생적 갈등으로 승화시켜 나가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정치적 당쟁이 국가와 국민생활에 피해를 가져다주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의 사색당쟁이 오늘날에도 재현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훌륭한 정치지도자는 멋진 신조어를 만들어 상대를 매료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저속한 용어로 정치인의 격을 낮추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쟁에서도 전세가 불리하면 후퇴해야 한다. 패할 것이 분명한데 전쟁을 감행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손자병법에서도 A,B,C 이다.

국민은 무식하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식견은 실로 수준급이다.

국민은 구경꾼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의 운명과 국민생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국회의원의 도덕성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싸움꾼 국회위원보다는 절충하는 국회의원이어야 한다. 생산적 국회의원이 자질이어야 한다.

4.15 국회의원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21대 국회는 자당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중시하는 양심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그런데 비례정당을 만든다고 하니 21대 국회도 제20대 국회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면 어찌할까. 괜히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2.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성을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먼저 도덕성의 개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1) 도덕의 개념

맹자는 도덕을 직이요, 의요, ()라고 하였다.

직은 정직이다. 정직은 진실 되고 진정성을 말한다. 의는 정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즉 당위성이다. 도는 도리이다. 사람이면 지켜야 하는 예의와 예절이다. 도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간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인생의 바른 길이다. 대도무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의 최고 가치는 인간 존중이라 할 것이다.

18세기 독일의 비평철학가 임마뉴엘 칸트는 모든 선행을 다 도덕적이다라고 평가하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가언적 명령에 의한 선행은 진정한 선행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가언적 명령에 의한 선행이란 무슨 말인가 자기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선행이거나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 후보를 위한 선행 등은 참 선행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에서 하는 선행,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이 참선행이요 도덕적이라고 했다. 칸트는 이러한 참 선행을 정언적 명령에 의한 도덕적 행위라고 했다.

 

2)도덕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완전무결한 절대적 존재이므로 신에게는 도덕이 불요하다. 신은 그 자체가 도덕적 존재라 할 수 있다. 동물은 본능만을 추구하는 존재이므로 도덕이 필요치 않다.

도덕은 인간에게만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과 동물 사이에 있는 중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간이 도덕에 충실하면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고 인간이 부도덕한 행동을 자행하면 동물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래서 가장 도덕적인 인간인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를 4대 성인이라고 한다.

반면에 본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도 있다. 권력에 취해서 형제와 자식을 죽인 군왕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아 알고 있다. 성욕을 극복하지 못해서 여성만을 대상으로 연쇄 살인을 자행한 악마도 있다.

뉴욕대학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인간을 호모 듀푸렉스라고 했다. 이중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을 추구하는 생물학적 존재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성을 지닌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유화적 대인관계를 갖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의와 불의, 정과 사, 친절과 기만과 같은 양극성을 지녔다. 그래서 항상 신은 인간에게 의롭게 사라고 의식을 환기 시킨다.

 

3)도덕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도덕은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은 아니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낸 규범이다. 그래서 도덕은 인간에게 객관적이고 외적 존재였다. 왜냐하면 실은 자아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도덕은 있어 왔고 인간은 출생과 더불어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보고 배우고 느끼며 내면화하고 주체화시켜왔다. 그러면 도덕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호프스(1588-1679)는 인간관계를 적대관계로 보았다. 원시시대는 약육강식하는 수림의 법칙만이 존재 했었다. 중국의 고대사를 보면 춘추전국시대가 있었다. 기회만 있으면 약소국가를 공격했었다. 완전 적대관계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싸우고 죽이기만 했다면 공멸했을 것이다. 그래서 승자는 패자를 죽이기로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세력에게 복속시켜 주종 관계를 맺고 공물을 상납케 하였고 승자는 패자를 통치하기 위해서 규범을 만들어 준수토록 하였는데 그 규범이 법이 되고 도덕이 되었다는 통치규범설이 있다. 또한 강자는 약자 간에 적당한 이익을 주고받으며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자고 했다는 사회계약설도 있다.

도덕이 어떻게 만들어졌건 도덕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하게 하는 사회적 규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도덕은 앞으로도 계속 있어야 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인류의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4)도덕성이란 무엇인가

도덕성이란 사회적으로 발생한 문제 사태에 대해서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모른 채 할 것인가. 대응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하는 개체 내부의 심리적 성향이다.

도덕성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인지적도덕성, 정의적도덕성, 행동적도덕성 등 3요소로 구성 되어 있다. 3개 요소가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가지면서 특정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모든 도덕적 행동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 또는 충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평가 받는 것은 그 사람이 행한 외적으로 나타난 그 사람의 언행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철학이나 신념 등이 어찌되었던 도덕적으로 평가 받는 것은 밖으로 나타난 그 사람의 언행이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5)도덕은 불변(不變)한 것인가

도덕은 변하는 도덕이 있고 변하지 않는 도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제였다. 또 반상제도가 있었다. 신분제도를 통칭하는 말이다. 양반, 중인, 상민, 천민 등으로 나뉜다. 이 때는 주종관계가 있었고 복종, 순종, 자기희생 등의 덕목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숭상이 중시 되었고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영향이 컸다. 충효사상이 명당으로 인한 송사 사건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화장을 권장하고 수목장을 하는 가정도 증가하고 있다. 제사 지내는 일도 번거롭다며 간단하게 가족예배로 바뀌는 가정도 늘고 있다. 민주주의가 들어와서는 자주. 자립, 책임, 의무, 봉사, 협력, 배려 등과 같은 새로운 덕목이 도출되었다. 이와 같이 시대에 따라서 도덕은 바뀐다. 또한 지역에 따라서 부족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런데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이나 부족을 초월해서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한 인류 공통의 도덕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이다. 이 인간의 양심을 인륜적 도덕이라고 한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도덕이다. 양심에 가책 받지 않은 행동이다. 부끄럽지 않는 행동, 떳떳한 행동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군부독재와 싸우면서 행동하는 양심을 외쳤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구호였다.

 

6)도덕의 자율성

도덕은 누가 시켜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스스로 마음에서 울어나서 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도덕은 주체적이고 내면적이다. 자기통제에 의한 것이다. 인간도 생물학적 존재이기 때문에 욕구도 욕망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욕구충족 이전에 법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저촉이 되는지 어떤지를 살피게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레드라인을 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나의 욕구충족은 그 자체로 부도덕한 행위이다. 법적으로 저촉되지 않는 행위라 해도 남에게 피해가 된다면 스스로가 억제하고 자기 욕구와 욕망을 통제해야한다. 바로 이것이 도덕적 자율이다.

 

7)도덕과 법률

고대사회는 제정일치 시대였다. 법과 도덕과 종교가 미분화 상태였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분리되고 분화되었다. 법은 강제력이 있고 도덕은 강제력이 없다. 법을 위반하면 신체적 구속을 받기도 하지만 도덕은 신체적 구속을 받지 않는다. 법은 시효가 있지만 도덕은 시효가 없다. 법의 시효란 일정기간이 지나면 죄 값이 소멸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도 있다. 그러나 도덕에서는 한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다. 보이지 않는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영원히 달고 다닌다.

 

3. 정의(正意)는 도덕과 어떻게 다른가

 

정의를 정의하기가 어렵다. 도덕과 어떻게 구분지어 지는지 애매하다. 그런데 맹자는 정의를 도덕 더하기 정당성과 당위성이라고 했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도덕의 개념에서보다는 정의라는 용어에서 실천의 뜻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의거, 의병, 의사, 의인, 의협 등과 같은 용어가 그러하다.

바꾸어 말하면 정의는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의를 보고 그것을 제거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힘없는 정의는 죽음을 초래한다. 그러니 힘없는 정의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런 때의 정의는 잠재적 정의일 뿐이다. 힘 없는 정의도 정의일까. 2010년 미국 하버드대학 마이콜 센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써냈다. 미국에서는 그 책이 10만부도 채 팔리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문도서로서는 드물게 130만부 이상 팔렸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정의에 너무나 목이 말라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리를 지키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의리를 지키려고 정의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다행불의자폐 하는 사람이 있다. 불의를 자주 행하면 스스로가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대의멸진 이라는 말도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는 가족조차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4. 도덕성을 회복하려면

 

1) 개헌(改憲)이 되어야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 정치학과 알렉스 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된 경우가 많은데 정치인이 부패 했다기 보다는 정치인을 부패하기 위해 유혹하는 정치 시스템이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권력구조가 권력남용의 유혹에 빠지기 쉽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탄 교수의 지적이 백번 옳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8.15 광복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11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다. 그 중 고 김영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만 임기를 마치고 천수를 누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하셨고 박정희 대통령은 총격으로 사망, 고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탄압으로 자살,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도중 감옥에 갔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의 행적은 정말 부끄럽고 한심 스럽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음식체제 때문에 탄생한 대통령의 5년 임기 단임제는 문제가 많다. 정책을 5년간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현임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제어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그러니 팬덤(Fandam)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정치 이념에 매몰되어 독선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만약에 임기 4년 중임제를 한다면 어떨까. 재선을 위해서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

민심을 중시할 때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이념도 수정 보완해 갈 것이며 자신을 지지하는 팬들에게도 민의를 전달하고 이해, 납득시키려 하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국민과도 완전 소통되어 레포가 형성되고 중용의 정치가 실현되리라고 믿는다. 중용의 정치란 산술적중간이 아니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바람직한 협치가 이루어진 포용이 정치를 말한다. 인간은 본래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기에 이기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과 개인 간에, 개인과 공동체간에, 또는 공동체와 공동체간에 이해관계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이 충돌을 완화시키고 조정하는 역할이 주용의 정치이며 그 일을 맡아 있는 기관이 대통령인 것이다. 대통령이 민의를 타박하고 정책에 반영할 때 국가는 안정되고 경제는 성장할 것이며 국민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야 반란죄, 쿠데타 등으로 무기 또는 사형을 받은 중죄인을 사면 복귀시키는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 그와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엄히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2) 국회가 개혁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연봉 삭감

김형도 통합당 관리위원장이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했는데 제 21대 국회의원의 세비를 30% 줄이겠다고 동의한 사람에게만 공천장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사이다 같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사퇴했으니 허망하게 되어 버렸다.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개인 보좌관이 한명도 없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좌관의 보수도 국고 지출은 3명으로 제한되었으면 한다. 9명은 너무 많다. 21대 국회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계류중인 법안의 신속한 처리

율사출신 국회의원이 많다 보니 입법 건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한다. 또한 산업 발전에 역행하는 규제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인권과 경제 문제 등의 법안을 우선적으로 신속히 처리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3) 공직자의 기강확립이 급선무이다.

복지부동이다. 공직자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근무태도가 요구된다. 세월호가 전복 되었을 때를 회상해 보자. 수백 명의 아까운 생명이 수장되는 순간에 구조를 해야 하는 국가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대통령이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으면 비서실장이 기지를 발휘해서 대통령의 지시라며 거짓말이라도 해서 해당 부서에 긴급통보해서 세월호 구조에 만전을 기하라고 명령을 하달했어야 했다. 나중에 대통령의 책임 추궁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 임기응변(臨機應變) 했어야 했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촛불혁명도 없었을 것이고 대통령 탄핵도 없지 않았을까. 엣부터 하인이 염엽해야 양본 노릇도 제대로 한다는 속담이 있다. 하급 공직자를 하인에 빗대는 것은 옳치 않는 말이지만 모든 공직자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아이이디어로 직무에 대처해 주었으면 한다.

공직자가 정직해야 한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에 걸쳐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세부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농어촌공사, 인천공항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이 탈세해서 그 중 21637억 원을 추징했다고 한다. 가장 모범적이어야 하는 공공기관의 장의 근무자세가 이러고서야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나랏돈 쌈지돈이라는 속설이 있다. 기획재정부가 국고 보조금 수급 실태를 집중 점검한 결과 20197월까지 12869원에 총 1854억원을 부정 수급한 것으로 밝혀져서 우선 647억 원을 회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부정부패 상황으로 추정해 볼 때 각계 각층에 도덕성이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여겨진다. 부조리 등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범죄 피고인에게 부과한 천문학적 액수의 추징금이 공중에 붕 떠 있다.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으면 추징을 할 수가 없다. 벌금은 돈을 내지 않으면 노역장에 유치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형법은 가진 자 들의 법이란 말이 있다.

 

4) 형사범의 형량을 높여야 한다.

형사범에게 형량을 높이는 것은 그와 같은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 차원이다. 그런데 요즈음 법원의 형사 범죄자에 대한 판결이 너무 가볍다는 여론이 높다. 그러니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관들이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러터진 공권력을 강화해야한다. 청와대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장기간 농성하고 있어도 어찌하지 못하는 공권력이 아쉽다.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에 진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태자 건이 죄를 지었다. 그러자 진효공 으로부터 변법의 제정과 집행을 위임받은 좌서장직의 위앙은 태자에게 벌을 주지 못하고 그의 스승에게 먹물로 얼굴에 글자를 새기는 경형이라는 형을 내렸다. 얼마 후 태자는 또 죄를 지었다. 위앙은 일벌백계주의 원칙하에 이번에는 태자 건에게 코를 베는 의형을 가했다. 부왕인 진효공도 위앙의 태자에 대한 형 집행에 간여하지 아니했다. 이로써 진나라의 백성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준법정신에 철저해졌다. 그리하여 진의 병법은 깊은 산골 마을까지 알려졌고 효공의 증손자 영정때에 이르러서는 중구천하를 통일하였고 영정은 스스로가 짐을 진시황제라 부르라고 하명하였다. 이와 같이 법이 엄했고 그 시행 또한 철저했으므로 진나라는 부강해졌고 백성들은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되었다.

 

5) 늑장재판도 큰 문제거리다.

법원 행정처의 자료에 의하면 민사소송의 평균기준이 2017년에 16.3개월, 2018년에는 17.3개월, 2019년에는 19.6개월 걸렸다고 한다. 2019년 대법관 1인당 상고심을 맡은 건수는 3694건이었다. 법관의 수요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편이다.

 

6) 검찰의 기소도 늑장을 부린다.

20194월에 벌어진 국회의 페스트트랙 사건은 임기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21대 국회에서는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인가. 검찰의 너무나 안이한 처리가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철저하게 법대로 처리하는 국가사회가 되어야 도덕성이 회복되고 정의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7) 바른 정치를 위한 제언

어려서부터 정치 훈련을 시키자.

초등학교에서 학급회, 학교 자치회 등을 활성화 시켜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체득 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훈련을 받고 자란 국회의원은 국회 밖으로 나가서 싸우거나 국회에서 난동을 부리는 페스트트랙 같은 사고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싸워온 사람들은 투쟁의 정치는 잘 할 수 있지만 타협의 정치 훈련을 받지 못한 탓에 포용하는 정치에는 익숙하지 못한 듯하다. 특히 정치하는 정치꾼은 융통성 있고 여유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정치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나를 싫어하고 우리를 반대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꼿꼿하고 외골수적이 굽힐 줄 모르는 인격자는 정치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잘못을 긍정적으로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정치꾼이자 지도자이다.

집단사고를 중시하는 훈련을

한 두 사람의 생각보다는 여러 사람의 생각이 좋은 아이디어를 모색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여러 사람도 동질의 집단이기 보다는 이질의 집단이라야 효과적이다. 토론학습훈련을 많이 시켜야 한다. 그리고 반대의견도 표출되도록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참모진에는 학자 출신도 필요하지만 지방자치단체를 경영해본 유 경력자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국민의 실정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수석들의 인사에 이러한 원칙이 적용 되어야 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초기 비서실장에 자기편이 아닌 노태우 정권 때의 정부수석 김중권을 기용하여 정권 초기의 난국을 타개했다.

끝으로 유달산 어민동산에서 석양을 맞는다. 불타는 듯 이글거리던 태양이 뉘엿뉘엿 바다 속으로 잠긴다. 인간은 일생일사의 원칙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비록 전직이 국왕이었을지라도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많이 벌였으면 세상을 위해서 멋지게 살고 가는 노블레스 오비리주가 널리 확산되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타 축구선수 호날두는 고국 포르투갈의 코로나19 환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개인 소유 호텔을 병원으로 개조해 치료병원으로 쓰라고 내놓았다 한다. 의료진과 치료 장비도 자비로 투입하기로 했단다. 고 화담 구본무 회장님은 이 길을 앞서 가셨다. 생전에 자신에게는 엄격하셨고 남에게는 한없이 인자하셨던 덕인 이셨다고 한다. LG 복지재단에 의인상을 제정하셨고 의인을 찾아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마지막 가시면서는 명당이라는 선산에 있음에도 자신이 생전에 가꾼 숲에 수목장을 하게 하신 보기 드문 의인이시다. 누구보다도 정직하셨고 의를 추구하셨고 가진 자 로서의 도리를 다 하신 분이시다.

우리 사회에 도덕성이 회복되어 화담 같은 의인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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