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책방의 이주의 책]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생강빵과 진저브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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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책방의 이주의 책]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생강빵과 진저브래드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4.0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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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김지현 지음/ 비채/ 2020년 3월 31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맛있는 음식은 꽤나 자극적이다.

특히 누군가 먹는 장면을 보는 일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극적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한 경험. 깊은 밤에 라면을 끓여 먹거나, 치킨이나 피자를 배달시켜 먹고나서야 비로소 평화롭게 잠들 수 있던 기억 정도는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을까. 이른바 먹방의 유혹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소설 속에서도 이런 먹방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소설 속의 음식들은 그저 음식 그 자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상황이나 감정, 음식과 얽힌 사건, 소설적 배경 등을 기반으로 한다. 게다가 텔레비전처럼 시각적 효과는 전혀 없이 어디까지나 텍스트만을 통해 전달된다. 능숙한 작가일수록 음식에 대한 묘사는 뛰어나기 마련이다. 그 모양새와 빛깔과 냄새와 식감과 맛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뿐만 아니라 상상력마저 자극하는 바람에 텔레비전의 먹방 이상으로 식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외국소설의 경우에는 우리와 식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묘사나 설명만으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로는 뻔히 아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한계나 오역으로 인해 엉뚱한 음식으로 오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 소설을 읽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소설 속의 음식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책이다. 세계 명작이라 불리는 영미권 소설들을 중심으로 음식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발췌하여, 소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음식의 정체를 밝히거나 오역을 바로 잡기도 한다. 작품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문학적 분위기라는 게 있기 때문에 같은 음식이라도 번역에 의해 소설적 무드나 인물의 캐릭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라는 제목도 이런 점에서 기인했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같은 음식이지만 어감이 다르다. ‘라즈베리 코디얼을 마시는 소녀와 산딸기주스를 마시는 소녀는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다를 것이기에 결국 독자의 경험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소설을 완전히 다시 읽는 어마어마한 경험을 했다. 하이디가 먹었던 검은빵, 미하엘 엔데의 마법의 수프에서 왕자와 공주가 먹었던 수프, 작은아씨들의 에이미가 손님들에게 대접한 바닷가재 샐러드가 어떤 음식인지 정확히 아는 일은, 소설의 배경과 장치와 인물의 사정을 아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음식을 기반으로 모든 소설을 다시 읽고 싶은 충동마저 느껴야만 했다. 가볍고 쉬운 문장에 경쾌한 일러스트까지 더한 이 예쁘고 감각적인 책 덕분에 오늘밤 나는 진저브레드 하우스에서 헨젤과 그레텔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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