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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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4.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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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어버이날이라고 자식들이 용돈을 가져왔다. 외식했으면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5만 원권이 든 봉투가 이미 경숙의 손에 쥐어졌다. 봉투의 두께가 제법 쥐는 느낌이 있었다. 돈이 한참 들어갈 때이고, 자신들의 생활도 정해진 월급으로 빠듯할 터였다. 그래도 늘그막에 이런 것이 행복이라고, 경숙은 내심 흐뭇했다. 때마침 남편이 바람을 쐬러 나가자고 했다. 요즘 목포 뻘낙지가 맛있을 때라고 했다. 경숙은 간이용 아이스박스를 챙겼다. 싱싱한 해산물을 사서 자식들에게 두루 나눠줄 생각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날씨가 마음을 달뜨게 한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며, 소녀시절로 달려가게 만든다. 핸드폰을 열어 날씨를 점검한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좋음이다. 창문을 내리자, 다디달면서도 상큼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무시로 안겨온다. 도로 옆 야산에 아카시아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그런 풍경을 보는 순간, 경숙의 가슴 속에서 뭔가 뭉클하더니 용트림하며 치솟는다.

어머, 아카시아··, 황시리 철이구나.”

경숙의 혼잣말에 운전석의 남편이 곁눈으로 그녀를 본다.

그거 맛 좋지. 살짝 말려서 기름에 튀겨놓으면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지경이거든. 그거 정말 개미 있는 음식이야.”

아이, 먹는 것만 생각나세요?”

황시리라? 아참! 큰형님 제사가 이맘때구나?”

경숙의 남편이 멋쩍은 웃음을 날린다.

그는 예전에 굴비가 아닌 황석어가 제사상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있었다. 그것도 빨간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맵디매운 황석어찌개였다. 그래서 경숙은 남편에게, 황석어찌개가 제사상에 올라가게 된 사연을 알려주었다.

경숙은 목포로 가는 동안 황석어 떼에게 에워싸인 채 헤쳐 나오지 못한다. 죽어서도 눈을 부릅뜬 황석어가 돌연 되살아나서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환상을 겪는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카시아 꽃향기에 실려 승용차 안으로 헤엄쳐 들어오더니 지느러미를 나긋나긋하게 살랑거리며 경숙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승용차 안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그 애들을 붙들고 싶어서 손을 내밀면,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사방으로 일제히 퍼지면서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어느새 다시금 나타나서 나긋나긋한 지느러미를 또 뽐내기 시작한다.

이리 와 봐. 어서 이리. 도대체 어디를 떠돌다가 이제 나타난 거니? 내가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었는지 알기나 하니.’

경숙이 다시금 손을 내민다. 그러면 또 다시 일제히 흩어지고 퍼지면서 모습이 사라졌다가 이윽고 다시 나타나곤 한다. 애가 탄다.

어린 시절, 경숙은 황석어 철이 되면 고생이 심했다. 황석어를 채반에 올려 건조할 때면 왕파리 떼들이 몰려왔다. 어쩌다가 한 마리라도 올라앉게 되면, 며칠 후에는 좁쌀만 한 벌레들이 굼실굼실했다. 경숙은 황석어가 건조되는 동안에 바투 붙어 앉아 대나무 가지를 휘두르며 파리 떼 쫓는 일을 도맡아 했다. 한동안 그러다 보면 팔이 떨어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아팠다. 급기야, 골이 잔뜩 나서 대처에 나가 있는 큰오빠를 향해 콧방귀를 날리며 구시렁대곤 했다.

해마다 경숙의 어머니는 황석어를 넉넉히 샀다. 몸통이 누런 황석어는 작은 녀석도 뱃속에 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 황석어 대가리를 떼거나 그대로 두고 햇볕에 반 건조시켰다가 소금 항아리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큰오빠가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굽거나 찌개 반찬을 만들어 밥상에 올리곤 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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