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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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5.0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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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들앉아 있어야 탈이 없는 벱이니께"
소설-남도작가상 노성애

 

[목포시민신문] “이것아, 네 큰오빠는 집안의 대들보여. 장남에다가 장손 아니냐잉.”

숙모가 경숙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숙모의 손이 약손이라도 되는지 한껏 짓눌려서 아렸던 머리와 목이 개운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큰오빠와 작은오빠 얼굴이 떠올랐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광주로 떠나갔으니까 두 달여 보지 못했다. 황석어 때문에 밉게 느껴졌던 큰오빠가 경숙에게 환한 웃음을 날리며 다가왔다. 방학이 되어 집에 있을 때면 연필을 깎아주고, 방학숙제도 도와주고, 바닷가로 데리고 나가 조개껍질을 주워 목걸이도 만들어주었던 큰오빠였다. 오빠들이 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오빠들을 어서 데려왔으면 했다.

어머니와 오빠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전국이 소란스럽고 광주도 야단이라던데 멀쩡한 얼굴로 나타났다. 물론 소란스럽다는 이야기도 전혀 없었다. 아마 헛소문이 나돈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머니가 오빠들을 데리러 가고 싶었든지, 광주라도 도시 바람을 쐬고 싶은 나머지 허황된 소설이라도 쓴 듯싶었다.

할아버지 제사는 잘 모셨다. 큰오빠는 제사상에 놓였던 육고기나 부침개 같은 맛있는 음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황석어찌개에만 매달려 가시째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국물도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고 냄비를 입으로 끌어당길 정도였다.

이튿날, 오빠들이 광주로 다시 나갈 때 아버지가 큰오빠를 불렀다.

“세상이 우텁다더라. 학교허고 방구석에만 박혀 있어야 헌다.”

“걱정 마세요. 전 고등학생이잖아요.”

“아야, 세상이 우터울 때는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화가 닥치는 벱이다. 조개처럼 입 꽉 다물고, 두더지처럼 꽁꽁 들앉아 있어야 탈이 없는 벱이니께 꼭 명심혀라. 특히 너는 우리 집 대를 이어갈 장손이여, 장손, 알것냐잉?”

아버지는 ‘장손’이라는 말에 힘을 주면서 헛기침까지 터트렸다. 어머니는 오빠들을 데리고 버스 다니는 면소재지까지 걸어 나갔다. 경숙도 따라갈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제, 황석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왕복 시오리 길을 걸었더니 무릎과 발목에서 낡은 대문 여닫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장딴지는 알밴 붕어였다.

오빠들을 데려다주고 되짚어 온 어머니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장독대 근처에 한동안 서서 면소재지와 목포 쪽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곤 했다. 그 하늘에 뭉게구름은커녕 새털구름 한 점 없었다. 시퍼런 하늘이 바다고, 먼발치의 푸른 바다가 시퍼런 하늘 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피곤하겠다며 방안으로 들어와서 쉬라고 채근해도 막무가내로 그 시퍼런 하늘만 바라보았다.

“아따, 어째서 장꽝이 요 모양이다냐잉.”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행주로 닦았던 그 항아리들을 핑계 삼으며 부엌에 들어갔다 나왔다. 들고 나온 행주로 항아리들을 건성건성 닦으며 시퍼런 하늘을 힐끗힐끗 쳐다보곤 했다. 경숙도 툇마루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번갈아 덜렁거리면서 어머니 눈길을 따라 하늘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지만, 그 하늘이 쨍그랑, 하며 깨질 것 같았다. 그 틈새로 푸른 빗방울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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