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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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5.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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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하늘에 멋쩍은 웃음 날려

[목포시민신문]

어느새, 어머니가 절구통 옆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모주를 꿀떡꿀떡, 마시고 있었다. 할아버지 제사 때 쓰고 남은, 귀하게 아껴둔 술이었다, 그건 당연히 아버지 몫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긴 한숨을 안주 삼아 염치없이 들이켜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아리송한 것은, 평소에는 술을 별로 입에 대지 않았던 어머니가 그날따라 모주망태로 소문난 구장 아저씨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다음날, 큰오빠에게서 전보가 왔다. 광주에 잘 도착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어머니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빠의 전보를 받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닷가 해당화처럼 환한 얼굴로 변해있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남았던 시루떡과 인절미를 누런 포대 종이에 싸서 집배원 아저씨의 가방 속에 망설임 없이 찔러 넣어주었다.

쓰잘데기 없이 걱정혔던 내가, 꺽지 같은 멍텅구리였던 모양일시.”

어머니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시퍼런 하늘을 향해 멋쩍은 웃음을 날려 보냈다.

하루가 지났다. 세상이 어수선하다는 게 말짱 헛소문이고 허황된 소설일 거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쑥덕대는 광경이 경숙의 눈에 자주 목격되었다. 한 술 더 떠서 구장네 아주머니는 영아언니가 걱정된다며 목포로 나갔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대문 앞에서 바장였다. 일 없이 절굿공이를 잡았다 놓기도 하고, 황석어가 들어있는 항아리 뚜껑 열고 닫기를 일없이 반복했다.

먼 바다의 까치놀이 암적색으로 변해갈 즈음, 안절부절못하던 어머니가 뭔지 결심했던 모양이다. 텃밭에서 열무를 뽑기 시작했다. 경숙이 손전등을 들고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금세, 열무김치가 만들어졌다. 경숙은 어머니가 열무김치를 느닷없이 담근 이유를 예상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반 건조된 황석어를 꺼내 누런 포대로 싸기 시작하자,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니가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다. 경숙이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나섰다. 이참에 신기루나 동화나라 같은 목포를 구경하고, 그곳보다 더 크다는 광주 구경도 해보고 싶었다.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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