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외고의 공부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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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외고의 공부벌레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1.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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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외고 국제반 졸업생 연세대 국제학부 배은희

대원외고생들의 삶, 그 화려함의 이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학창시절
공부와 치열한 싸움 그래도 후회는 남아
하루 3시간 잠… 공부때문 점심도 거러

많은 사람들이 외고 출신, 특히 대원외고 출신이라고 하면 대단해 하는 눈치이다. 좋은 대학 출신이지만 대원외고 출신인 것을 더 사람들이 쳐준다고 말하는 대원외고 동창들도 있다.
외고들 중에서 특히 대원외고는 항상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또 올해 많은 신문 매체에서 대원외고가 경기고와 함께 가장 많은 법조인을 배출한 고교로 올라섰다는 기사도 떴다. 대원외고는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인 것 같다. 사람들이 대원외고에 대해 갖고있는 이미지는 긍정적인 것 보다 부정적인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부모 잘 만나서 돈 많은 아이들만 가는 귀족학교. 이런 편견이 어느 정도 맞긴 하다. 대원외고생들은 대부분 많은 혜택을 받고 태어났다. 하지만 이 혜택들만으로 좋은 대학을 가고 사회에서 성공한 것은 절대 아니다. 먼저 대원외고 출신들이 오직 혜택으로 성공했다면 어떻게 가장 많은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글을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원외고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키길 바란다. 대원외고생들의 삶이 어땠는지 그리고 얼마나 치열했는지 써나가겠다.


나는 3년 동안 매일 아침 새벽 6시쯤에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학교 등교시간은 7시 40분까지였지만 집이 먼 관계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는 듯이 매일 아침 학교에서 대절한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나는 잠이 많아서 스쿨버스를 놓치는 적이 꽤 있었다. 그런 날들은 지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학교는 꽤 특이한 학교였던 것 같다. Student Leadership Guidance 라는 SLG 카드가 있었다. 이 카드는 일종의 벌점 같은 거였다. 지각을 하면 한 장을 받고, 복장규칙을 어기면 한장, 학교의 수칙을 어기면 받는 카드였다.
학교에 도착한 다음 하루의 일과는 청소로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주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대청소인 날에만 모두 참여했는데 대원외고는 달랐다. 우리는 매일 아침, 정해진 구역을 전학생이 참여해서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한 다음 자습시간인 0교시. 매주 수요일마다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시청하였다. 그 다음 다섯시까지 수업을 한 다음 한 시간의 석식시간이 있었다. 여섯시부터는 야자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보충수업도 있었고 자율학습의 시간도 있었다.
여섯시부터는 나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영어과 소속이었으므로 외국인 원어민 선생님들에게 영어수업을 들었다. The Great Gatsby, 같은 클래식한 영어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또 에세이를 쓰면서 영어 실력을 향상해갔다.


나는 고등학교 1,2학년때는 살이 5키로그램(㎏)이나 빠졌었다. 영양부족과 잠부족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가 너무 많아서 나는 점심급식을 못 먹는 경우도 많았다. 급식실로 밥을 먹으러 가는 시간조차 아깝고 부족해 나는 점심을 포기했었다. 점심을 포기하면 1시간이 더 추가로 주어지기 때문에 그 전날밤 새벽 세시까지해도 끝내지 못했던 숙제들을 점심을 굶어가면서 끝냈다. 굶주린 배는 매점에서 산 빵과 흰우유로 채웠다.


나에겐 쉬는 시간은 화장실을 가거나 잠을 자거나 밀린 과제들을 하는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잡담할 시간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뭐라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미안하다. 쉬는 시간인데. 그때는 너무나 잠도 부족하고 영양도 부족하고 공부빼고 모든 것이 부족할때어서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공부로 쏟아져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최저몸무게를 찍었다. 오히려 대학교와서 살이 더 쪘다. 아무래도 고등학교때 그 최저몸무게로는 원상복귀하기 힘들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들은 얘기지만 이때 나를 어렸을 때부터 아시던 우리 어머니의 친구분께서 나를 보시고는 본인의 딸은 절대로 대원외고를 보내지 않으리라 생각하셨다 한다. 내가 너무나 말라있고 폐인 같아  보였다 한다. 나는 내 자신이 이렇게 될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왔다.


나와는 반대로 고등학교때 살이 찐 친구들도 많았다. 이들은 공부를 하면서, 밤을 새면서 받은 그 많은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것이었다. 내 친한 친구중에 이십 키로를 찐 친구도 있었다. 이만큼 공부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주었다.
여러분들에게 살을 빼면서, 혹은 찌면서 공부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건강은 챙기면서 공부해야한다. 하지만 대원외고생들을 보면 3년동안은 다른 것을 거의 모두 포기하고 공부에만 매진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혹독하게 산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왜 더 열심히 못했다, 왜 1학년 때부터 확고한 목표를 갖지 못했을까. 왜 1학년때는 아무 생각, 계획이 없었을까. 그랬다면 더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만큼 치열하게, 혹독하게 노력하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면 현재 고등학생인 당신은 지금 살만한가.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여러분들은 더 노력해야 한다. 난 고등학교 3년 동안 이렇게 노력했지만 대원외고 상위가 아니였고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
그리고 대원외고생인 내가,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많은 혜택을 받는 내가 그렇게까지 3년동안 평균 세시간을 자가면서 공부해왔던 내가 그렇게 까지 노력했는데 여러분은 그것보다 더한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피땀을 흘려가며, 잠을 줄여가며, 공부빼고 모든 것을 줄여가며 노력한 당신, 그 노력은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힘들다면 3년 뒤에 당신을 상상해보라.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지않을 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성취했을 당신을. 웃고 있을 당신을.
하지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진 않으면 좋겠다. 항상 힘든 순간에도 매사에 웃으면서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산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도 고등학교시절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게 부끄럽다. 항상 여러분의 멋진 목표, 멋진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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