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박광배 시민기자] 목포 애환 서린 삼학도 항구포차 개문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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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광장-박광배 시민기자] 목포 애환 서린 삼학도 항구포차 개문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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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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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삼학도 사랑 낭만항구로 승화 기지개
서민, 관광객, 남도 음식...목포 추억 소환

[목포시민신문]

목포 삼학도 해경부두에 위치한 항구포차
목포 삼학도 해경부두에 위치한 항구포차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끈한 국수 한 사발에 소주 한 잔 들이키는 모습, 이젠 익숙하리만치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포장마차 씬(scene) 이다. 여기에 인심 좋은 사장님께서 힘내라며 서비스안주까지 내어준다면 더욱 완벽하다.

대한민국 포장마차의 유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포장마차의 형태가 나타난 것은 1950년대 두꺼운 광목천으로 윗부분만 가린 마차에서 참새구이와 소주를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노점에서 술과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우마차에 음식을 싣고 다니며 팔았는데 겨울에는 식사하는 사람들이 춥지 않도록 우마차 위에 포장을 쳤고 그래서 포장된 마차에서 파는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포장마차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손수레가 나오면서 군밤이나 고구마 호떡을 파는 상인들도 손수레에 그런 장치를 하고 끌고 다녔는데 그것 역시 관습대로 포장마차라고 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경제부흥에 힘입어 포장마차도 전국적으로 성행했고 그때부터 포장마차는 곧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술집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80년대 포장마차 풍경(출처 KBS옛날티비)
80년대 포장마차 풍경(출처 KBS옛날티비)

포장마차라 함은 서민들의 지친 삶과 애환이 서려져 있는 곳이었다. 세상사에 치여 하루를 보내고 난 뒤 포장마차에 들려 소주 한 잔 들이키며 언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곳, 주머니가 가벼워도 부담 없이 들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는 소주를 잔 술, 혹은 반병으로도 판매 하였고 오이, 당근 과 함께 초고추장을 서비스 안주로 내어주었다.

 

그러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거리정비사업 일환으로 대규모 철거 작업에 들어가면서 차츰 사그라졌다가 1997년 외환위기 때 다시 포장마차 붐이 일기 시작했다. 퇴출당한 직장인들의 애환처가 바로 포장마차였다. 그때부터 포장마차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고, 1만 원대의 안주를 파는 대중식당으로 변모 해 갔다고 한다.

90년대 포장마차 거리
90년대 포장마차 거리

요식업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백종원씨 역시 IMF여파로 큰 빚을 졌으나 1998년 논현동 주차장하나를 임대하여 커다란 실내형 포장마차를 만들고 과거 잠원동 부근의 포장마차 촌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신포차라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지금의 백종원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항구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목포항구포차

목포에도 포장마차거리가 여러 곳 존재했었다. 특히 목포 한국은행 뒷골목과, 2호광장, 3호광장은 수십 개의 포장마차가 줄을 지었다. 이후 거리정비사업과 여러 사정으로 대부분 철거되거나 몇몇 포장마차는 실내로 이동하여 영업을 이어갔다. 대표적인 곳이 목포MBC맞은편 88포장마차와 하당에 위치한 유달먹거리다. 몇 년 전 원도심에 추억을 되살린 남행열차포장마차가 생겼다, 여러 이해관계들로 얼마가지 못해 사라졌다.

최근 맛의 도시에 걸맞은 특별한 맛과 추억을 만끽 할 수 있도록 삼학도 구 해경 부두에 항구포차를 조성했다. 지난 3월 공모를 시작으로 1차 서류평가와 2차 음식 품평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15명의 민간 사업자를 선정했다. 각 업체별로 개별메뉴 와 낙지탕탕이와 해물라면은 모든 업체 공통메뉴로 구성돼있으며 가격은 8000원대부터 5만 원대 까지 다양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지치고 쓰린 가슴 달래주는 서민들의 안식처인 포장마차라기 보단 거대자본이 투입 된 기업형 포장마차가 되어버린 느낌,

 

비닐 한 장으로 세상과 구별된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고

(박노해노동의 새벽중에서)

서민들은 가슴 밑바닥의 이야기, 혼자 견뎌내는 이야기, 서로의 생을 묵묵히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임영태포장마차중에서)

 

세상사에 부딪히고 꺾여 비틀대는 사람들에게 눈보라 속에서도 등대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는 포장마차는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가? 그래서 포장마차의 주인공은 언제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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