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교수신문이 교수들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2012년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무엇이 가장 어울리는가 하는 질문에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擧世皆濁(거세개탁)'이 가장 많은 응답으로 선정됐다. 설문에 참여한 전국 교수 626명 중 전체의 28.1%(176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을 선택했다고 한다. '거세개탁(들 거, 세상 세, 다 개, 흐릴 탁)'이란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 말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실린 고사성어다. 굴원이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그를 알아보고 어찌하여 그 꼴이 됐느냐고 물었다. 이에 굴원은 "온 세상이 흐리는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다"고 답했다고 한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2012년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이 뽑힌 것은 혼탁한 한국 사회에서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교수신문은 분석했다.

MB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은 ‘거세개탁’이란 용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들마저 정치참여를 빌미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파당적 언행을 일삼고, 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가 이를 뒷받침 한다. 윤리와 도덕이 붕괴하고 편법과 탈법이 판치는 세상, 개인 및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해 좌우가 갈리고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불신과 불만으로 사회가 붕괴ㆍ방치된 모습이 바로 2012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거세개탁'의 2012년이 가고 2013년 새해가 시작됐다. 그러나 '거세개탁'은 2012년과 같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새정부를 이끌어 갈 국무총리 인준과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편법 증여와 변칙 재산상속, 병역문제, 위장전입, 봉급자의 재산급증, 부적절한 업무추진카드 사용 등 기존에 ‘거세개탁’의 세상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일들이 다시 방송과 신문지상에 거론되고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 당사자가 일부 해명을 했는데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보니 자진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비등한다.

우선 야당인 민주당 등 정치권 공세가 만만치 않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반대기류가 흘러나온다. 시민단체·언론·헌재 내부 등에서도 연일 부도덕한 처신들이 폭로되고 있다. 도덕성 차원을 넘어 재판관으로서의 재판 편향성 등 자질 시비까지 나온다. 인준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김용준 총리후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낙마가능성까지 점치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지만 인준과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인준과정이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보다 슬픔이 앞선다. 왜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일들을 반복해야 하는가?  언제 끝이 날까?  우리나라에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온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설마 없는 것일까? 

많은 일들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별한 죄책감 없이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하고 세금을 탈루하고 위장전입을 해 왔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런 사람들이 국가를 위한 공직을 맡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일의 기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는 ‘修身(수신)’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옛 선현의 교훈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수신’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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