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사이’와 목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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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사이’와 목포의 추억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2.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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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의 문화 세태 비평-시비(是非)

 
나에게 목포의 별칭을 붙이라면 주저없이 맛 고장?예술의 고장(味鄕·藝鄕)이라고 하겠다. 남들이 하는 걸 따라하기를 싫어하는 나 조차도 남들이 목포를 미향·예향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만은 전혀 이견이 없다. 흔히들 ‘남도 예향’이라고 해서 광주를 포함한 전라남도 전체를 예향이라고 한다. ‘남도 예향’이라고 할 때의 중심 도시는 광주가 된다. 지금도 광주 구 도청앞 골목길에 가보면 ‘남도 예향’의 자취가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광주를 포함한 광역 개념의 ‘남도 예향’ 보다는 훨씬 농축된 개념으로 예술적인 멋이 밀집돼 있는 목포야말로 ‘남도 예향’의 진원지이자 ‘예향의 본향’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다가 목포는 남서해안 갯벌의 모든 맛이 모이는 맛의 고향(미향)이기도 하니 미향·예향인 것이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고 맛은 자연의 진수라고 볼 때 예술과 맛의 만남은 아름다운 자연의 극치이고 멋의 최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의 모방이자 진수인 예술과 맛의 극치는 <中庸>에서 말한 和, 즉 자연의 氣를 포함한 모든 감정이나 정서가 過不及없이 節度에 맞아 達道를 이룬 경지를 말한다. 이는 맛의 논리, 예술에 있어서의 논리를 말하는 것이고, 모든 논리는 자연의 질서정연한 모습에서 나온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목포를 떠난 나는 서울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게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몸과 마음을 이루어준 목포 신안의 음식과 정서에 대한 갈증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목포 하면 금방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젠사이(단팥죽), 유달콩물, 곰밤부레 나물, 홍어보리국...그 중에 젠사이는 중학교 시절 ‘한이 서린’ 음식이다. 유달중학교 들머리에 ‘유달빵집’이 있었다. 길모퉁에 있는 그 빵집 유리창가엔 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만두·모찌가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가끔 부잣집 애들을 따라 유달빵집에 들르는 날이면 젠사이는 필수 주문품이었다. 찐 팥을 80%쯤 갈아 만들어 설탕을 친 팥죽에 새알 대신 붕어빵을 찍찍 찢어 넣거나 한 두 개의 모찌떡을 뜯어 넣고 위에 누런 계피 가루를 팍 찌끄러놓은 것이었다. 입안에 자극적이고 상큼하게 풍기면서 구수한 팥내음과 어우러지는 계피향, 붕어빵과 모찌떡이 보드랍고 안온하게 이와 혀와 입안을 애무해주던 기억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꿈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얼마 전 일본 교토에 갔을 때 젠사이의 본고장인 그곳의 단팥죽을 먹어 보았다. 그러나 계피향도 없었고 팥이나 안에 들어간 건더기의 맛이 내가 꿈에 그리던 유달빵집의 그것과 달랐다.

목포시장 공무원 시민 할 것 없이 구도심 살리기에 애를 쏟는다. 대개 지름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굳이 새로운 것은 만들려고 하는 것은 돈도 많이 들고 사람들에게 적응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거리 일대와 유달산 고화도에 루미나리가 빛나고 목포대교가 명물로 들어선 것도 좋다. 그러나 지나친 인위는 ‘반자연’의 폐해를 가져온다. 예향과 미향의 근거는 자연과의 합일이고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지향점이다.

나는 구도심을 살리는 것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과 정서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물 뿐만 아니라 거기에 예향·미향의 원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일본은 교토를 비롯해서 여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옛모습 보존지역이 일등 관광지이다.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 유럽도 마찬가지다. 전주 한옥마을이 잘되고 외국인들이 몰려오는 까닭도 그렇다. 서울 인사동은 옛 모습을 허물고 새 것을 만들어 중국 관광 상품을 싸놓아 망한 경우이다.

오거리-항동 일대에 적산가옥을 비롯한 옛 모습을 살리고 ‘맛의 거리’에 민어 갈치뿐만 아니라 젠사이, 원조 콩물(요즘 목포의 콩물은 볶은 콩가루를 섞어서 예전 모습을 잃었다), 홍어보리국과 곰밤부레 나물이 있는 백반 음식점이 들어서도록 하면 좋겠다. 오거리 다방가에서 예전의 정취어린 시화전이 상설전으로 열리면 5060의 추억을 자극하여 불러들일 것이다. ‘오거리 예술행사’는 지금 호화스런 건물만 지어놓고 거의 놀리고 있는 갓바위 문화공원의 ‘일년 상시 행사’로 이어지며 향토문화상품(예컨대 남인화풍의 문인화 등) 시장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공해를 수반하는 공산품보다 문화와 예술을 파는 것만큼 바람직한 장사는 없다. 하당에서 해마다 열리는 도자기축제 같은 것은 시 예산 낭비하는 짓이다. 거기에 나오는 도자기 가운데 살만한 것이 거의 없다. 차 생활을 위한 다기도 거의가 엉망이다.

또 한 가지, 외지인들이 편히 쉬고 잘 곳이 있어야 관광의 3박자(보고·먹고·쉬고)가 완성된다. ‘목포 1935’ 같은 차별성 있는 숙박업소를 지원하여 숙박료를 낮추도록 하고, 일본처럼 유휴·노휴 노동력을 이용하여 하루 24시간 쓰레받이와 빗자루를 든 사람이 골목과 공원과 공중 화장실을 두루 살펴서 담배꽁초나 휴지 한 장 보이지 않고 번들번들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비싼 경비를 마다않고 일본에 가면 안온한 느낌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목포 구도심 살리기에 고민하는 분들이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올 수 있다.

최근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라는 책이 나왔다. 이방인인 세 명의 방송프로듀서가 목포의 맛에 반해 책을 낸 것이다. 이들은 BBC의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스페인의 어느 부두 퇴역 어부들이 바닷가에 허름한 방을 얻어 그날 잡아온 생선을 요리해 먹으며 하루 종일 유유자적 소일하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목포 미식기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 책의 저자 한 사람은 말한다. “목포 어시장 가까운 곳에 바다가 보이는 가게 하나를 얻어서 지인들과 신선한 생선을 조리해서 끼니를 때우고, 친구들과 낭독회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 나의 은퇴 후 로망이다.” 세 PD의 꿈은 목포 구도심 발전 방안에 골몰하고 있는 목포시장과 공무원들에게, 목포를 떠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외지에서 데려온 이외수라는 소설가 한 사람이 있는 강원도 화천군은 난리인데, 한국 최초의 여류 소설가 박화성, 한국 희곡문학의 거두 차범석, 동양화의 대명사 남농 등 문화 예술인을 수두룩하게 두고 그들의 흔적과 작품으로 화려한 문화공원까지 둔 목포는 왜 밤바다에서 조명분수쇼만 하면서 조용한가?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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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2013-02-14 15: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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