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 사람은 남인데- 임전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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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사람은 남인데- 임전허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2.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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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霧山水로 이어지는 雲林山房 4代畵脈
 

제20회 국전에 백부님께서 심사위원이 되셨다.

당시 백부님 곁에는 자기돈 써가면서 수행비서처럼 따라다니는 제자가 있었는데 평소 공짜를 좋아 해서 잔정에 빠졌는지 그에게 ‘우남(又南)’(또, 南農이라는뜻)이라는 호(號)를 주셨다.
제자의 정성이 아무리 지극하고 갸륵하다 하더라도 운림산방의 혈맥(血脈)이 3代에서 4代로 이어지는 의미가 있는 가문(家門)의 호(號)를 혈통(血統)과 성(姓)까지 다른 제자에게 선뜻 내주고 말았으니 진짜 받아야 할 나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어떤 놈이 했는지 당장 쫓아가서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조카의 피는 물과 같다.’고 스스로의 신세를 자탄하면서 참새가 죽을 때 낸다는 ‘짹’ 소리 한마디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된 것은 그 당시에도 백부님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무능함 때문 이였을 것이다. 

지금도 다를 바가 없지마는 당시에도 심사위원에 위촉이 되면 심사위원 각자에게 묵시적으로 특선(特選)하나가 배정이 되는데 그날 밤 그 특선을 놓고 벌인 가족회의에서 끗발이 센 형과 백모(伯母)님이 아주 강력하게 우남(又南)쪽으로 손을 들었다. ‘한 다리가 천리’라고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만약 내가 친자식이었다면 어떤 회의를 하였을까?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며 짹, 짹, 짹, 참새 소리를 수 없이 냈지마는 “다음 심사 때는 너를 시켜주겠다.”는 기약 없는 위로의 말로 제20회 국전은 끝이 났다.

내가 그토록 간절했던 것은 당시의 모든 정황으로 보아 백부님의 심사가 이번이 마지막일거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그 후 그 직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결국 그 선배에게 두 번이나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그 후 그 제자는 남농은 물론, 남농 가족들의 그 흔한 대소사(大小事)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래도 그 사람은 남인데’ 라는 말은 그 제자가 백부님 곁을 떠난 다음에 나온 말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독, 독, 독, 하고 독수리 소리를 냈어야하는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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