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읽기-이윤정 동화 작가]아빠의 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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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 읽기-이윤정 동화 작가]아빠의 봄-2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9.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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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동화작가

[목포시민신문] 그 뒤로 사람들은 나에 대해 길게 말하지 않아도 휠체어?”라는 말로 내 이름을 불렀고, 내가 상을 받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놀라워했다. 마치 휠체어 타는, 다리가 불편한 아빠의 딸은 공부를 잘하거나 남들보다 뛰어나서 상을 받으면 안 되는 일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알 수 없는 경계심으로 나를 대할 때도 은채와 유주는 달랐다. 두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휠체어라고 부르지도, 아빠 이야기를 해서 괜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냥. 장예니. 있는 그대로의 장예니로 나를 대해 주었다. 그런데 오늘. 그 아이들마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나를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수업을 마칠 때까지 머릿속은 온통 하얀 백지가 되어버렸고, 선생님의 말씀은 귓가에서 둥둥 떠 다녔다.

완전 불구래.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고 무서워.’

유주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늘 하교를 같이 했던 은채와 유주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가방을 먼저 챙기고 교실 문을 나와 버렸다. 그 아이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투덜투덜 신발로 땅을 차며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뒤에서 뛰어오던 민수와 영재가 내 책가방을 어깨로 치고 달아나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하다가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은 운동장 바닥에 쓸려 금세 피가 흘렀다. 하지만 두 아이들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는커녕 히죽거리며 놀리기 시작했다.

, 뭘 봐? 일어나기 힘들면 너희 아빠 휠체어 빌려서 타. 히히히

가슴 속에서는 불꽃이 튀고, 온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내 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는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괜히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평소엔 사람이 거의 없어 조금 무섭기도 한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낮인데도 사람이 북적거렸다.

공원 입구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보니 남도 역사 바로알기라고 붙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행사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는 얼굴의 몇몇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다 말고 행사에 참여 하고 있었다. 룰렛을 돌려 경품을 받거나 체험 활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손에는 쿠키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거나 가위로 무언가를 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저만치 은채와 유주의 모습도 보였지만 나는 모른 척 했다.

혼자서 걸어 다니고 있으니 각 부스에 있던 언니들이 나와서 행사 설명도 해주고 체험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행사는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그리고 몸이 아픈 이웃들의 마음을 직접 경험해보고 느껴본다는 취지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지어 안대를 하고 걸어 다니는 체험, 휠체어를 타보는 체험 등을 하고 있었다. 나는 휠체어를 보자 나도 모르게 울컥 했다.

우리 꼬마 아가씨도 휠체어 한 번 타볼래요?”

싫어요!”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함을 꽥 하고 지르고 말았다. 나에게 말을 걸던 언니는 순간 당황스러워했다. 괜히 이유 없이 화풀이를 한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미안했지만 쉽사리 속상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체험 한 번.”

언니는 무안한 표정을 걷고 다시 한 번 나에게 권했다.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 하죠? 체험 한 번이라고. 그런데 평생 훨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이거 너무 한 것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복지 부스에 있던 언니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거에요?”

나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언니들을 째려보고 그곳을 지나왔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 찬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한 마음으로 우리 아빠를 그리고 나를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어떻게 한 번의 체험으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 우습고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한참을 걸었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이 없어 한산한 부스가 보였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계셨다. 둘러보니 사진전시회였다. 젊은 청년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탱크 위에 올라가 있고 함성을 지르는 모습이었다. 전시회의 이름은 잃어버린 봄이었다.

여기 사진 속의 아들들은 모두 우리 아들이나 마찬가지야.”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사진을 어루만졌다.

이 아이들이 남도를 지켰고, 그리고 우리 역사를 지킨 거야.”

나 역시 뭔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사진 중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디서 본 사진인데?’

기억나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책가방을 거실에 던져두고 내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책장 제일 아래 서랍에서 앨범을 꺼내보았다. 어릴 때 앨범과 엄마, 아빠 결혼 앨범 뒤에 작고 낡은 갈색 앨범을 펼쳤다. 그 속에는 몇 안 되는 아빠의 어릴 때 사진과 아빠의 대학생 때 사진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빠는 그 앨범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아빠가 대학생 때까지는 휠체어를 타지 않고 두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이 좋아 어렸을 때부터 자주 이 앨범을 열어 보았다. 빠르게 앨범을 넘겨보았다.

! 찾았다.”

맞다. 조금 전 공원에서 본 그 사진이 앨범에 똑같이 꽂혀 있었다. 그렇다. 아까 할머니가 말해준 사진 속 할머니 아들과 아들친구는 바로 우리 아빠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빠였어.”

아빠는 늠름하고 멋지게 태극기를 손에 들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마치 독립투사 같은 모습이었다.

예니야~예니 왔니?”

방 밖에서 아빠 소리가 들렸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아빠가 볼 새라 재빨리 앨범을 덮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예니, 여기 있니?”

아빠는 방문을 열고는 휠체어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으응.”

말을 얼버무리며 앨범을 서랍장 속에 넣었다.

뭐야아? 사진보고 있었던 거야?”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와서 간식 먹으라고 말하고는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휠체어를 굴리는 아빠의 뒷모습을 멀끔히 바라보았다. 아빠의 청춘과 맞바꾼 아빠의 다리. 아빠가 그렇게도 지키고 싶어 했던 역사의 시간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 지금. 아빠에게는 아무도 그 누구도 감사하다고. 목숨 걸고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오히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빠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함께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쳐다보기도 한다. 그런 시선을 견뎌온 아빠는, 얼마나 슬프고 힘이 들었을까. 딸인 나조차도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동안 부끄럽게 만 생각했던 것이 떠올라 아빠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조금 전 만났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날의 봄 이후로 다시는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봄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다고. 그리고 상처 속에서 평생을 죽음으로 버텨내고 있다고. 아빠에게도 봄은 그동안 잃어버린 봄이었을까?

그날 이후로 며칠이 지나도록 은채와 유주와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빠에게 제안한 꽃놀이도 다시 말하지 않고 있다. 은채와 유주도. 아빠도. 나처럼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무료한 시간이 흘러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깼는데,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졸린 눈을 비비고 거실로 나가보니 아빠는 거실 바닥에 주르륵 옷을 늘어놓고는 윗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고 있었다. 무슨 집이 패션쇼 장도 아니고.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보고는

우리 딸. 일어났어?”

아빠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어떤 옷이 어울리냐며 나에게 티셔츠를 들어보였다.

아휴. 옷은 이제 그만 좀 입어보고 여기 와서 이것 좀 도와줘요.”

주방에서 엄마의 부산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에 들어서보니 엄마는 식탁 가득 김밥 재료를 늘어놓고 얼굴에 밥풀 하나를 묻히고는 김밥을 말고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엄마, 이게 뭐야아?”

엄마는 나를 바라보더니

뭐긴 뭐야. 네가 꽃놀이 가자고 했다며?”

생각해보니 지난 주 무심결에 흘리듯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진짜 가려고?”

아빠는 힘차게 휠체어를 밀고 주방으로 들어서며

우리 예쁜 딸. 예니~ 이 모자는 어때? 너무 오래된 모자라 어울리지 않나?”

아빠는 여전히 패션쇼 중이었다. 엄마는 바빠 죽겠는데 무슨 모자 타령이냐며 어서 도시락 통을 열어 달라고 했다.

아빠는 들뜬 목소리로

네네. 얼른 도시락 통을 열어 드리지요.”

라며 도시락 통 뚜껑을 열어 엄마 앞에 놓아주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딩동~”

, 벌써 왔나?”

엄마는 아침부터 누가 올 사람 있냐며 현관문을 열러 나가는 아빠를 향해 외쳤다.

, 은채랑 유주도 같이 꽃놀이 가자고 해서.”

아빠의 말에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그래?”

라고 대답하며 손에 참기름을 발라 김밥을 문질렀다. 나는 놀란 토끼눈으로 현관으로 들어서는 은채와 유주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렴. 환영한다. 얘들아~”

아빠는 함께하는 꽃놀이가 더없이 기대된다며 거실바닥에 늘어놓은 옷을 한가득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은채와 유주는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는, 잠옷 바람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

은채와 유주는 두 손을 모으고 쥐었다 폈다 하면서

어제 너희 아빠에게 와서 사과 드렸어.”

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날. 우리도 공원에서 열리던 사진전 봤어. 너한테도 미안하고. 그리고 너희 아빠한테도 죄송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

…….”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우리는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봄꽃들 사이에서 정말 정말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아빠의 봄은 결코 잃어버린 봄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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