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박찬웅 칼럼니스트] 임금님의 전속요리사 “숙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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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박찬웅 칼럼니스트] 임금님의 전속요리사 “숙수”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0.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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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코로나19사태 이후 음악, 공연, 드라마 같이 야외촬영이나 배우, 스텝들이 많이 필요한 프로그램보다는 실내촬영과 소수의 출연진으로 높은 시청률이 기대할 수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과 외식이 자유롭지 못한 시청자들의 욕구 또한 반영되어 요리프로그램이 더욱 더 많아 졌다고 한다.

요리관련 방송을 보면 한식 관련한 여성요리사 1-2명으로 제외하고 모두 남성요리사들이 출연한다. 또한 국내외 유명한 호텔이나 식당의 주방장들은 대부분이 남성이라고 한다. 남성요리사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불과 칼을 사용하는 위험한 작업이 많고, 무거운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다루어야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상당한 높은 편이라 여성들이 오랜 기간 근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 과연 드라마 속 "대장금(大長今)"이 활약했던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어떠했을까? 드라마를 보면 궁중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장금이를 비롯해서 모두 여성궁인들로 나오고, 요리를 하는 공간인 수라간은 금남의 공간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요리라는 업무는 절대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다. 지금 관점과는 많이 다르지만 궁중의 요리, 제사음식, 각종연회와 주연과 같은 공식적인 행사의 요리는 남성이 맡는다는 유교적 사고가 담겨있었다. 또한 지금과는 다르게 남녀가 한 공간에서 요리라는 업무를 같이 한다는 것을 조선시대에서는 별로 좋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 요리를 담당하던 남성요리사를 숙수라고 하였는데 경국대전에 따르면 궁중의 음식을 담당하는 수라간은 이조에 속해있고 인원은 388명이며 이중 12명만 여성이고 이들은 만들어진 음식을 옮기거나 차리는 보조적인 역할만을 담당했다고 한다. 숙수는 다른 궁인들과 다르게 결혼도하고 궁궐로 출퇴근을 하였으며, 10여세의 아들을 조수로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서 숙수의 자리를 물려주었다고 하니 조선시대 요리사, 숙수라는 직업은 대를 이어가는 가업이자 장인들의 직업이었다. 이들은 보통 천민이거나 중인계급의 신분이었지만 궁중이나 관청 등에 소속되어있는 만큼 중요한 기술직 공무원이었다. 또한 요즘 말하는 정규직 공무원이었다. 이들은 보통은 사옹원이라는 기관에 소속되는데 종9품에서 시작해서 종6품까지 오를 수 있었고, 숙수는 아래로 차비나 사환이라는 임시직 직원을 두고 함께 일했다. 고기를 다루는 별사옹, 생선을 굽는 적색, 두부를 만드는 포장, 술을 빚는 주색, 떡을 만드는 병공 등등으로 철저히 분업화되어 전문적으로 각자 소임만 담당했는데 이들은 궁궐에서만 근무하지 않고 외국사신이 오거나 왕이 멀리 출타했을 때 파견되어 요리하거나 야외 출장 요리도 담당하였다. 지금으로 보면 호텔식당과 거의 유사한 전문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던 같다. 숙수들은 궁중뿐만 아니라 중앙과 지방관청에 소속되어 근무하였는데 이들 또한 대부분이 남성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요리가 남성숙수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사적인 영역인 일반 가정에서는 여성들이 음식을 담당했고 그중 양반가에서는 그 집안과 지역마다의 특별한 요리법과 주조법을 종부에서 종부로 대물림하여 이어왔다.

남성요리사인 숙수의 손맛과 여성요리사인 어머니들과 종부들의 손맛이 어울려진 우리나라의 요리문화가 현대에 와서는 세계인으로 부터 건강하고 아름다운 요리로 각광받는 우리의 전통요리인 한식- K푸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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