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일제 식민지 수탈 역사 담지 못한 목포 고하도 목화 체험장
상태바
[편집국에서] 일제 식민지 수탈 역사 담지 못한 목포 고하도 목화 체험장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1.10 2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용철 대표이사

[목포시민신문]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 이후 수많은 자원을 수탈해 갔다. 일제의 수탈은 천연자원은 물론 농수산물까지 극에 달했다. 일제 식민지 수탈항 역할을 한 목포항은 쌀, 소금, 면화, 김 등 수탈 농수산물의 재생산 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갔다. 정미소, 면직공장 중심으로 도시 산업이 육성됐다. 1904년 일본의 목포 영사인 와카마츠 도사부로는 미국의 육지면 종자를 한국에 들여와 고하도에서 시험재배에 성공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서구 열강들과 함께 아시아 전역을 중심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게 된다. 식민지 침탈 전쟁이 확전되면서 군복 등 각종 전쟁물자가 급격히 요구되어진다. 군복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양과 질이 좋은 육지면 재배가 요구되어지고, 그 재배지가 목포를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이 최적의 장소란 것을 발견하게된다. 일제가 도입한 미국산 면화종은 재래종보다 4~5배 크게 숨꽃이 열리는 생산량을 증가시킬수 있었다. 하지만 면화 수확기인 5월에 일본 본토는 우기로 수확에 차질을 빚는 반면 목포지역은 청명한 날씨로 수확에 지장을 받지 않았다. 일본인 목포영사가 고하도에서 시험재배를 하게 되고 수확까지 성공하면서 면화재배를 급속히 늘려간다. 일본영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고하도에 조선육지면 발상지 비를 세웠다.

조선총독부는 다양한 품종 재배를 통한 소득증대를 적극 홍보하면서 농민들에게 면화로 대체해 재배하도록 강요했다. 면화를 재배하게 된 농민들은 가난한 생활이 나아지기보다는 쌀 수탈 등으로 더욱 식량이 부족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고리대금으로 빚을 지고 농토를 잃고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으로 전락하든지 아니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빈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당시 생산 면화 100%가 국내 소비보다는 목포항을 통해 일본 나고야로 수출됐다. 도시에 몰려든 농민들은 근로정신대와 징용에 착출됐고 목포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면직공장 노동자로 다시 전락하게 된다. 목포 면직공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13~18세 어린 소녀들이었다고 일본의 여류작가는 여행기록에서 증언했다.

고하도 면화는 일본제주의자들의 식민지 수탈과 병참기지화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재배되고 농민들의 농토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작물이었다.

지난달 27일 목포시는 조선 육지면 발생지 기념비가 세워진 고하도에 전국 첫 목화 체험장을 개장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국내 첫 육지면발생지란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목화체험장을 개장하고 목화씨를 붓 뚜껑에 숨겨와 국내에 들여온 고려시대 문익점의 목화와 역사적 사실이 맞닿아 있다고도 했다.

이것은 목포시의 잘못된 식민지 역사인식의 민낯을 보여준 같아 씁쓸하다. 고하도 면화 도입은 일제 식민지 침탈 속에서 전쟁물자 병참기지화를 위해 재배된 사실을 알리지 채 홍보를 하고 있다. 목포시가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서 비롯된 면화재배란 사실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마치 육지면 재배가 일제의 미화된 식민지 정책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것은 마치 친일 학자들이 식민지 조선의 개발을 통해 근대화를 앞당겼다고 주장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친일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친일의 근거로 삼는 주장과 흡사하다. 홍보가 일제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미화할 수 있다는 지적에 목포시는 아니라고 펄쩍 뛰고 있지만 시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육지면 재배가 일제 식민지 수탈 정책을 미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시는 면화체험장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다시 고민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시가 일제가 식민지 수탈과 침탈할 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면화를 고려시대 문익점의 애민정신과 비교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 왜곡은 물론 일제 식민지 정책의 미화까지 한 위험한 발상이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목포시가 목화 체험장의 첫 기획단계에서부터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목화 체험장 내에 조성된 문화관에 시는 조성한 내용물이 고하도 목화의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곰 조형물을 바롯해 면화 베틀기과 솜 타는 여인들 인형, 재배지 홍보 영상물 등만 설치하는데 그치면서 면화재배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려 하지 않았다. 부실한 내용의 면화 체험장을 조성하면서 목화 첫 재배지란 점만 부각한 나머지 친일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문익점의 애민정신을 억지 춘향식으로 끌어다 접목해 홍보하면서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결과를 낳았다.

지금이라도 시는 목화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목화문화관을 새롭게 구성하는데 논의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시가 늑장 대처할 경우,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이나 학생들에게 일제 강점기 일본인 목포영사가 들여와 첫 재배하기 시작한 고하도 목화가 식민지 백성들에게 큰 시혜를 베푼 일 인양 왜곡 인식될까 우려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