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풍선을 더듬는 바늘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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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풍선을 더듬는 바늘의 위로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1.1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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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수오서재/ 20201111일 발행)

[목포시민신문/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제페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누리꾼. 인터넷 뉴스를 읽고 시 형식의 댓글을 쓴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쓴 댓글시를 모은 첫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로 수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책의 앞날개에 나와 있는 제페토에 대한 소개글이다. ‘제페토는 필명이 아니라 닉네임이고, 그는 시인이 아니라 누리꾼이며, 따라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댓글을 쓰는 사람이다. 댓글을 읽은 누리꾼들의 눈물은 빠르게 전염되었다. 댓글을 일부러 찾아보는 이들이 늘어났고 급기야 2016, 그는 시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 그 쇳물은 쓰지 마라. //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 바늘도 만들지 마라. //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 그 쇳물 쓰지 말고 /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 정성으로 다듬어 / 정문 앞에 세워주게. // 가끔 엄마 찾아와 /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전문

그를 댓글시인으로 만든 이 시를 읽을 때 마다 나는 운다. 반복해 읽어도 진정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가 많았으리라. 두번째 시집 우리는 미화되었다가 나왔다. 이번에도 형식은 똑같다. 뉴스와 댓글을 나란히 싣고, 그가 따로 블로그 등에 썼던 시들도 모아 엮었다. 2015년부터 2020년 사이의 글들이다. 잊혔던 수많은 뉴스들이 다시 떠올라 울고 웃었다. 포털에서 보던 뉴스들은 하나같이 잔인하고 무섭고 삭막한 사건 사고들 뿐인 것 같지만, 막상 그가 모아놓은 뉴스들을 다시 보니 훈훈하고 예쁜 사연들도 적지 않았다. 계절도 쉼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울컥울컥 분노가 치미는 사건들 사이로 비가 내리고 꽃이 피어나고 눈이 쌓였다. , 이 사람, 시인이구나.

서문에서 그는 말한다.

번번이 뾰족하고 까끌거린 것만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은 가시 돋친 생명이다. 밖으로 내보내기에 앞서 구부리고 깎고 표면을 다듬지 않으면 필경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댓글 한 줄을 쓰면서도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처럼조심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하다. 여전해서 고맙다.

살아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다./ 울 수 있다면/ 웃을 수도 있으리라는.”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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