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2030 young class’ ⑭ 곽지선] 비자발적 페미니스트의 탄생: 사회가 만든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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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2030 young class’ ⑭ 곽지선] 비자발적 페미니스트의 탄생: 사회가 만든 페미니스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2.1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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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애가 몇이요?” “딸 넷이에요” “오메, 아들은 없고?” “..” “하나 더 낳아보제?” 어릴 적 엄마를 따라다니면 항상 나오는 대화였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에게 엄마, 걱정하지마. 딸이 비행기 태워준다잖아. 나는 시집 안가고 사위를 데리고 올게!”라고 말하곤 했다.

다행히도 나는 남성중심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아 내가 딸이라는 것이 왜 안타까운 일인지 느끼지 못했다. 특히 옛날 사람인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혀 옛날 사람 같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녀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 당연한 건데 그게 왜 자랑이 되어야 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시절 시골 마을에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분은 정말 드물었다.

일례로 당찬 성격에 매년 반장을 도맡았던 둘째 언니가 학교에서 남자아이와 싸운 일이 있었다. 남자아이의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쫓아와서 어디 짜잔한 가시나가 내 귀한 손주 기를 꺾어 놓냐, 여자애가 얌전해야지 저렇게 드세서 되겄냐고 따져 묻자 우리 할머니는 짜잔한 가시나랑 싸우고 할머니한테 고자질하고 있는 머스마는 얼마나 짜잔하길래 그럴까요? 머스마가 얼마나 못났으면 그러겄소?”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남자아이 할머니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문이 막혀서 혼자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나는 할머니의 그 모습을 보면서 제인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1800년대 영국은 여자에게 상속권이 없었다. 베넷가의 가장인 아버지가 죽으면 그 부인과 다섯 명의 딸은 빈털터리가 되고 남자 사촌이 상속권을 갖게 된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둘째딸(엘리자베스)에게 상속자인 사촌과 결혼을 강요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의 생각을 더 존중했고, 세상의 인식과 다른 자존감을 키워줬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였고 작은아씨들의 조세핀이었고 빨간머리 앤의 앤이었다. 적어도 유년시절 가정에서 그러했기에 학교에서도 당당하게 생활했다. 이렇게 남녀차별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그야말로 평화주의자였다.

하지만 사회에 나온 나는 더 이상 평화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회사는 아이러니하게 미혼여성을 채용 조건으로 내걸며 여자는 결혼하면 직장생활이 끝이라고 했다. 직장에서 커피심부름을 하고 여자는 스물다섯이면 꺾인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해서 남편의 생일상만을 차리고, 남편 친구들에게 제수씨로 불렸다. 시댁에서 며느리 노릇을 하며 시댁의 가족들을 모두 높은 사람으로 대해야 했다.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나의 평화로운 세계는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그리고는 온통 남녀차별적인 세계만이 남았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딸을 위해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만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 딸에게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사는 것, 결혼과 육아, 어느 것도 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기득권을 가진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라고 비하하고, 자신들의 것을 뺏으려 한다고 경계하지만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도 아니고 남성에게 무엇을 뺏으려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 혹은 모든 인권이 차별 없는 세상을 지향하고 다 같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유엔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성격차지수가 낮은 유럽국가들의 국민행복지수가 높게 나오는 것을 보면 성평등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를 포함한 기혼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연차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시댁 제사, 시댁 행사, 자녀 학교, 가족 돌봄으로 연차를 사용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능력 있는 미혼 여성들은 멋있다가 아니라 독하다’, ‘기가 세다’, ‘저러니까 남자가 없다등의 말을 듣는다. 이처럼 회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별 불평등을 조장하는 문화는 한둘이 아니다.

자녀의 출생신고 시 해도 되는 성·본의 결정을 혼인신고를 작성할 때 협의를 해야 하는 것, ‘사위 역할은 규정하지 않으면서 며느리 역할을 규정해 놓는 것, 자녀의 출생을 여자의 출산이라고 얘기하면서 인구감소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모성애를 강요 하는 등 우리 사회에 남녀의 갈등을 야기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영화 에놀라 홈즈에서는 19세기 후반 영국이 여성참정권을 위한 선거법개정에 주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 시대 여성이자 흑인으로 살고 있는 인물 이디스는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냐고 묻는 백인이자 남성인 셜록 홈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권력 없이 사는 인생이 어떤 건지 몰라요.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본인에겐 이미 딱 좋은 세상이라서.”

누군가 나에게 왜 페미니스트가 되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아요, 다만 페미니스트가 필요 없는 세상을 바랄 뿐 입니다.”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느 한 문장이라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겪는 불평등한 사회문화를 물려주지 않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스스로 나는 기득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바로 기성세대이며,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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