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 윤소희 작가] 고양이의 거리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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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 윤소희 작가] 고양이의 거리 두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2.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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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목포시민신문]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집안에서 정해진 시각에 체질별 사료를 먹고, 정기적으로 동물병원에 가서 예방 접종과 건강 검진을 받으며, 중성화 수술을 하고, 전용 변기를 사용하며, 캣타워와 각종 장난감을 소유한 반려묘와의 생활이 그렇다는 얘기다.

더 오래 전, 어린 시절에도 마당이며 지붕 위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름을 갖지 않은 고양이들이었다. 각자의 집은 있으나 그들 스스로 정한 영역일 뿐, 누구도 우리집 고양이라는 애착을 갖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아침 저녁으로 마당 한 쪽에 밥과 멸치를 되는대로 비벼주는 것으로 캣맘 역할을 했다. 집 안팎을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고양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쥐를 잡자는 구호가 생활화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고양이들은 사람이 주는 밥을 먹고 열심히 새끼를 낳고 쥐를 잡는 일을 반복했다. 할머니는 밥을 주고 나서 잘 먹는지 어쩌는지 쳐다 보지 않고 쌩하니 돌아섰다. 내가 고양이들 밥 먹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서 있으면 손을 잡아끌어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사람이 보고 있으면 밥을 안 먹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늘 멀리서 물끄러미 봐야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쥐 잡기 위해 고양이밥을 챙겨주는 것처럼, 도둑이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왕왕 잘 짖어대는 개들도 집집마다 키웠다. 개는 고양이와 달리 각자의 이름이 있었고, 어느집 개인지 소속이 분명했다. 사람의 말도 잘 듣고, 함께 산책도 하고,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쓰다듬을 수도 있었다. 매일 마주하면서도 개는 가까웠고, 고양이는 멀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만 여겼다.

세월은 흐르고 라이프스타일은 변화를 거듭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고양이들도 어느새 꼭 껴안고 침대 위를 뒹굴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 특유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여러 마리의 생로병사를 겪으며 저절로 알게 된 사실 하나. 고양이들 특유의 거리 감각이다.

고양이들마다 성격이나 버릇이 다 다르긴 하지만 공통점은 사람과의 거리를 늘 일정하게 유지할 줄 안다는 점이다. 사람을 잘 따르고 좋아해 일명 개냥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들조차 늘 껌딱지처럼 붙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각 기관이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반려인의 기분이나 상황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고 다가오거나 적당히 떨어진다. 마냥 보채지도 않지만 마냥 냉정하지도 않다.

16년 째 나와 살고 있는 고양이 쌔미와 미미 역시, 언제 다가가야 하고 언제 떨어져야 하는지를 너무도 정확히 안다. 처음에는 밀당(?)을 하나 싶었다. 안으려고 하면 도망가거나 안겨 있다가도 품을 쏙 빠져나가 서운하게 하지만, 어느새 다가와 꼬리를 살살 비벼대면 마음은 다시 사르르 녹아버린다. 내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1m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있으면 누구의 옆에도 가까이 가지 않지만, 모두와 비슷한 거리가 되는 공평한 지점을 잘도 찾아 앉는다. 자로 재고 앉은 듯 정확하게 모두와 1m의 거리를 유지하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감각에 매번 놀란다.

개성이 다 다른 고양이들도 거리 두기에 대한 감각만큼은 꽤 비슷해보였다.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히거나 부담을 주지 않는 거리, 너무 멀어서 서운하거나 존재감을 잊게 되지 않는 거리. 이 어렵고 지혜로운 적당한 거리를 고양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수염으로 아는 걸까 꼬리로 아는 걸까. 고양이를 볼 때마다 거리 감각을 익히고자 여러 번 노력했으나 내게는 없는 감각 기관인 것만 같다. 늘 너무 가까워지거나 너무 멀어져 실패를 반복한다.

목포에 내려오기로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은 외지인으로서 겪을 소외감을 걱정했다. 한편, 과도한 관심과 참견을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정반대의 걱정이건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라는 조언만은 같았다. 이번 11월은 목포로 내려온 지 꼬박 3주년이 되는 달이다. 어떻게 지내왔는지 돌아본다. 나야말로 함부로 가까워지려 하거나 너무 멀찌기서 구경만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지만, 잘 모르겠다. 이제 거리 두기는 코로나 예방을 위한 생활 방역이 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들도 고양이처럼 1m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도 1m 정도면 적당한 걸까. 고양이들과 더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거리 감각을 완전히 익히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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