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신서의 교육 이야기] 2020의 끝에서 잔인한 4월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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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신서의 교육 이야기] 2020의 끝에서 잔인한 4월을 그리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2.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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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신 서(전남도교육청 정책기획 자문관)

[목포시민신문] 스산하게 산길을 뒹구는 12월의 낙엽은 필연의 길을 간다. 그 낙엽을 뒹굴게 하는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그 길목을 흐르는 바람을 내가 만난다. 바람은 제 길을 가고, 기다리거나 마주봐야 뺨에 스치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밑으로, 위로, 뒤에서 부는 바람은 내 뺨을 스치지 않는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각자에게 스치는 바람을, 이 지독한 인연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홀로, 외로이, 얼굴을 가리고 산길을 걷고 있다. 바람은 멈추면 바람이 아니다. 불어야 사는 숙명이다. 잠시 멈추었다 다시 불고, 작은 바람은 큰 바람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계속 불 것이다.

2020년 한해는 이제까지 살아온 우리의 일상의 파괴와 모든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모든 짐승과 벌레들에게 아무 검증 없이 다가가고, 만지고 심지어는 먹기까지 했다. 그 결과로 인수공동의 감염병에 걸렸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인간중심의 위계에서 비롯된 재앙과 징벌에 마주한 것이다. 코로나19는 무차별적인 개발과 환경, 자원착취를 통해 성장해온 인류에게 던지는 무서운 경고이다. 화석연료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이 낳은 기후변화! 기후온난화에서 비롯된 전염병 팬데믹은 자연의 역습이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야생동물 서식지가 무너지면서 동물에게 기생했던 균과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명과 인류의 모든 행동체계를 뒤바꿔놓고 있다.

우리는 멸종 위기 종이라 말하는 미래세대

자라나는 세대는 자신들이 멸종위기에 몰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보자. 빙하는 녹아내리고 해수면의 상승으로 지구 곳곳은 물에 잠길 것이다. 녹아내린 빙하는 태양의 열을 반사하지 못해 지구의 땅들을 사막화시키고 생태계를 파멸할 것이다. 설사 이번의 감염병이 퇴치된다 하더라도 온난화에서 비롯된 또 다른 감염병이 창궐하고 그 것들은 더 빠르게, 더 깊게, 더 넓게 세상을 뒤덮어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여전히 어른들은 지구의 허파인 브라질의 열대림을 베어내고, 공장식 축산을 계속하고,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해 화석연료를 끊임없이 태울 것이다. 이 절명의 위기에도 더 많이 효율적으로 생산하는데 몰두하는 기성세대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

우리세대와 이제 태어날 미래세대는 멸종할 것이다.

감염병 창궐은 힘들게 사는 자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한다.

“악마는 항상 꼴찌부터 잡아 먹는다” 라는 서양의 속담처럼 가장 취약한 집단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히고 있다. 금융위기 때보다 고용 충격이 더 크고 오래 갈 것으로 전망되고 특히 저 숙련, 저임금 노동자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 발 불평등은 한국 사회에서 고용, 교육, 자영업, 젠더 등 여러 분야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원격수업을 위한 컴퓨터, 노트북, 집안 환경과 일상의 돌봄 차이 등 온라인 수업환경조성이 가정형편에 따라 차이가 나고 수학과목의 학력격차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여성들에게 맡겨지면서 퇴직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고 음식, 숙박 등 대면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다 실직한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남성보다 여성 실업률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비대면이 늘어나면서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의 급증, 가정폭력 증가, 보건 종사자 여성들의 감염 위험 노출, 취약한 일자리에 집중된 저소득층 여성의 해고와 강제 휴직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전 세계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집에서 굶어 죽거나, 밖에 나가 일하거나 일거리를 찾다 코로나에 걸려 죽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절망감으로 격리된 채 많은 외로움을 견디고 있다. 엄마 없는 집에서 라면 끊여 먹다 두 형제는 죽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바닥을 부스면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살수 없다” 고 말했다. 가난한 자, 노동자, 일하는 여성의 차별과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언택트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약탈과 침략을 강화해가는 자본이 따뜻한 인간의 모습을 갖지 못하면 희망은 없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일하다 죽지 않도록 하는 것, 불평등, 불공정한 게임이 중단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절실하다. 지금 위기를 멈추지 않으면 다음 멸종 대상은 인간일 수 있다.

삶 속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다가 이 아름다운 터전을 황무지로 만들었는가?

잔인한 4월을 그리다.

전쟁은 인류역사의 시작부터 끊이지 않았지만 인류의 유일한서식지인 지구전체를 위협한 첫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다. 1922년에 발표된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전쟁이 현대인의 마음을 얼마만큼 파괴시켰는가를 절절하게 읊은 장시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죽음 속에서 삶을 잉태하는 4월의 잔인할 정도로 강력한 생명력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한다. 황무지는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만든 재앙의 굴레이지만 삶속의 죽음을 딛고 언 땅을 뚫는 대지의 생명력을 본받아 다시 희망을 만들자는 뜻 일게다. 인류가 붕괴되지 않으려면 지구의 아픔을 치료하는 데 모든 곳에서 모든 이가 뚫고 나서서 새로운 문명과 생명의 질서가 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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