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서 전문가주의를 넘어서는 시민참여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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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에서 전문가주의를 넘어서는 시민참여의 도전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2.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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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과학 정책, 비과학자도 참여할 때 가능하다

과학 연구는 큰 투자비와 정책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특히 자연과학이나 공학 연구는 사회과학 연구보다 10~100배의 예산이 들기도 한다. 따라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연구 예산을 따내려고 노력한다. 과학 연구의 성과가 국가 전체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고,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예산 지원은 정당화 된다.

그러나 요즘 복지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의 경우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예산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수많은 연구 주제들이 정부의 예산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주제가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들보다 학문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거나, 좀 더 실용적으로는 인간의 행복이나 국가 경제 발전, 혹은 미래의 문화 발전에까지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들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할까? 서로 자신들의 연구가 중요하다고 하므로 누군가는 그러한 주장에 대해 평가를 해야 한다. 그 평가는 바로 전문가들이 한다. 여기서의 전문가들이란 과학과 관련된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의원들, 과학 행정을 하는 공무원들과 해당 분야의 동료 과학자들일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세금을 내서 과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구의 혜택이 상용화되면 직?간접적으로 그 혜택을 보지만, 우리사회에 어떤 연구가 필요하고 그 연구에 얼마의 예산을 주는 것이 적당한지에 대한 판단 과정에 참여하기가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금기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전문가들에게만 과학을 맡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요리사가 요리 전문가라고 모든 것을 요리사에게만 맡기면, 그 식당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식당이 위치한 상권을 고려해 볼 때 주요 고객층은 누구이고, 그들의 필요는 무엇인지, 신선한 재료는 어디에서 안정적으로 적정 가격에 구할 수 있는지 등 식당이 성공하는 데는 요리사의 전문성 외에도 필요한 것이 많다.

이 책 『과학 기술 민주주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전문가의 영향력이 매우 큰 과학기술 영역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이 좋은가, 참여하는 것이 좋다면 어떤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과학기술이 진정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제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시민 참여의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꼽으면 “합의회의”라는 제도가 있다. 합의회의의 절차는 이렇다. 우선 의회 산하 조직이나 민간기구, 대학, 연구소 등이 독자적으로 혹은 연합해서 과학과 관련된 공공 주제를 선정한다.

그 주제를 언론에 공표하고 광고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알려서, 합의회의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의 신청을 받는다.

신청자들 중에서 주제와 관련해서 특정한 이해관계가 없고, 중요한 사전지식도 갖고 있지 않은 15명 내외의 일반인을 선발한다. 이들은 토론진행자의 도움을 받으며 해당 주제의 배경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들은 의문점이나 기타 질문들을 도출해 낸다. 시민들이 뽑은 질문에 따라,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소집된다. 시민패널은 상반된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등 검증의 과정을 여러 차례 진행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시민 패널은 합의회의의 결과에 대한 15~30쪽 분량의 자체 보고서를 작성한다. 전문가들은 보고서의 초안을 보고 명백하게 잘못된 것은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보고서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보고서가 확정되면 합의회의를 조직하고 운영한 기관은 이를 언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실험을 통해 신뢰를 쌓아왔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고, 갖지 못했던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신뢰가 존재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알고 싶은 것과 시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같은가? 과학자들이 갖고 싶은 것과 시민들이 갖고 싶은 것은 같은가? 과학이 신뢰를 쌓는 방식은 실험이지만, 과학 정책이 신뢰를 쌓는 방식은 합의가 아닐까?

<전형준 단국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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