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걷자, 쓰자, 웃자, 놀자
상태바
[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걷자, 쓰자, 웃자, 놀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1.21 09:4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포시민신문] 지난 한 해 바쁘게 달렸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억지로 풀려고 하면 더 꼬여 절망하고 아팠다. 마흔아홉 수를 톡톡히 치르며, 혼자서 다독이는 시간에 코로나 19가 찾아왔다. 4월부터 다행히 목포문학관에서 상주 작가로 일했다. ‘목포, 젊은 작가와의 만남이나 목포 문학 자료조사를 하면서 일에 파묻혀 살았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에 희열을 느낀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2020년을 마무리할 즈음 해남에 갔다.

해남은 가까운 듯 가깝지 않고, 아는 듯 알지 못해 아련한 곳이다. 문득 삶이 고단해지면 미황사나, 대흥사나, 도솔암이나, 땅끝에 가보고 싶어지는 맘이 생기니까. 안개가 지구를 삼켜버릴 것 같은 아침에 해남을 찾았다. 출발할 때 몽환적인 안개에 싸인 길,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그러나 도솔암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겨울 햇살이 눈 부셨다. 예전엔 비가 올 때 도솔암에 왔었다. 그날은 너무도 환하고 밝았다. 언제부터인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산사에 들면 기도를 한다. 도솔암에서 짧은 기도를 했다.

누군가 어란 항이 아름답다기에 그곳에 갔다. 조용한 작은 항이었다. 2시간마다 어불도 가는 배편이 있었다. 건너편 작은 섬을 돌처럼 우두커니 앉아 오래 바라보았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아도 좋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땅끝 송호해수욕장에 들렀다.

가끔 시간이 날 때 함께 여행을 떠나는 ·여름·가을·겨울은 우리 도반들 이름이다. 나는 여름이다. , 여름, 가을은 고요한 바다에서 잠시 여유를 즐겼다. 멀리서 역광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연인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겨울이 항상 문제다. 혼자 앞서가거나 돌발행동을 할 때가 많다. 그날도 바닷가에 오지도 않고 혼자 소나무숲을 서성거리다 사고를 쳤다. 아주 사나운 여자랑 실랑이가 붙었다.

, 여름, 가을은 차에서 기다리는데 겨울이 오지 않는다. , . 전화를 걸었다. 다른 날과 다르게 좀 심각했다. 자기 집 앞은 사유지라며 들어오지 말라는 사람과 바닷가로 가는 소나무숲이 왜 당신 거냐고, 잠깐 지나가는 것도 안 되냐고, 별것도 아닌 일로 옥신각신이다. 그런데 그 여자의 눈과 목소리는 단단히 약이 올라 있다. 경계선 밖으로 나왔는데도 사과하고 가라고 괴물처럼 날뛰었다. 사과했는데도 분이 안 풀리는지, 경찰까지 불렀다. 봄과 여름은 한숨을 쉬면서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침착한 가을이 모든 일을 수습했다. 일이 꼬이려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꼬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날 우리 여행은 막판에 망쳐버렸다. 그나마 조용히 끝난 것은 낮에 도솔암에서 기도한 덕분이라고 위로를 하고 돌아왔다.

그 후 그날의 상황과 미친 듯이 화가 나 있는 여자와 공감하지 못하고 막무가내인 겨울을 생각했다. 우리네 삶이 어쩌면 이렇게 좌충우돌, 예측불허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관계에 대해 우리는 고민했다.

일주일 후 새로운 마음으로 무등산을 찾았다. 이번에도 겨울은 혼자 앞서간다. 여름과 가을은 무등산을 처음 가는 것이라, 각자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봄은 언제나 중간쯤에서 밝고 환하다. 드디어 서석대(瑞石臺)에 도착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데, 불쑥 한 여자가 끼어들었다. 그 여자는 ·여름·가을·겨울네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아버렸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무등산 곳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여자에게 빠져들었다. 산사람만 알고 있는 아지트 같은 곳, 사진이 잘 나오는 곳,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었다. 눈이 쌓여 있어 미끄럽고 아슬아슬한 바위에 올라가 우리는 웃음 시합이라도 하듯 웃고 있었다.

가을과 겨울은 그 여자에게 빠져, 없던 기운까지 생긴 것 같았다. 봄도 아주 홀딱 반해서 우리한테 묻지도 않고 그리고 봄이라고 불렀다. 나도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에게서 겉돌기만 하던 겨울도 어느새 순해졌다. 가을은 산행이 힘들었는지, 너무도 다정한 여자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세 번이나 미끄러졌다. 다행히 다치지 않아서 나는 오랜만에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작년 말과 올 초 딱 일주일 사이 우연히 만난 극과 극의 여자들. 내 것 하나 내주지 못하고 빠득빠득 게거품 무는 여자와 내 것 다 내줄 듯 자꾸 배낭 가방이 열리는 여자 사이에서 우리는 웃다가 눈밭에 미끄러져도 괜찮아했다. 땅끝의 여자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랐고, 무등(無等)의 여자는 다시 만나 ·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되기로 했다. 코로나 19가 풀리고 봄이 오면 월출산 구정봉에서 달구경을 하고, 눈이 오면 무주 덕유산 향적봉 눈꽃을 함께 보기로 했다.

새해에는 걷자, 쓰자, 웃자, 놀자로 나의 계획을 세웠다. 매일 실천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산다.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떻게 삶을 나누고, 대해야 할지 조금 알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빛나는 한해를 꿈꾼다. Don, t Worry Be Happy.

/문학과의식등단. 시집 가족사진, 목포역 블루스있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전남도립도서관, 목포문학관 상주작가 역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여송 2024-04-20 14:02:04
걷자,쓰자,웃자,놀자 ᆢ그럽시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