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박찬웅 칼럼니스트] 미식가 열전 – 조선의 이단아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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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박찬웅 칼럼니스트] 미식가 열전 – 조선의 이단아 허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3.1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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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요즘 많은 방송과 매체 등에서 맛있는 요리나 식당들을 찾아다니는 방송이나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명사들이 유명맛집이나 지역특산물이나 향토음식들이 찾는 미식프로그램은 유용한 많은 정보들을 제공하고 대리만족이라는 큰 효과도 있기 때문에 인기도 많다. 방송이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맛집이나 맛있고 새로운 요리를 찾는 미식여행을 취미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거나 공유하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한다.

역사적인 인물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미식가라 불릴 정도로 맛있는 요리와 재료들에 대해 관심 있게 맛보고 즐기고 기록을 남겨 후대에 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역사에 대표적인 인물 교산 허균(1569~1618)은 조선시대 최고의 미식가였다. 허균 명문가의 막내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허엽은 동인의 영수로 대사성과 경상감사를 지냈으며 당대의 최고 문장가이자 지금도 강릉의 명물음식인 초당두부를 만든 장본인이다. 형들인 허성과 허봉도 문장으로 당대를 빛낸 인물이고, 누이는 조선 최고 여류 시인 허난설헌이다.

허균은 자신을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 칭할 정도로 미식가였다. 그는 관직에 부임할 때도 중앙정부에서 일하기보다는 맛의 고장 남원이나 생선과 게가 많은 부여로 보내달라고 청원할 정도했다고 하고 유배를 가면서도 유배가는 곳에 맛있는 음식이며 특산물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봤다고 하니 미식을 넘어 탐식을 했던 것 같다.

허균은 귀향지인 지금의 익산 함열 에서 변변하게 먹을 것이 상에 올라오지 않자, 예전에 먹었던 맛난 음식들을 생각하면서 쓴 책이 조선요리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도문대작>이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고기가 먹고 싶어서 도축장의 문이나 바라보다가 입만 씹어본다는 뜻이며, 서문에서는 "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하다 보니 이전에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난다. 그래서 이에 대해 글을 써보며 대신 즐겨보려고 한다."고 썼다. 또한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더구나 먹는 것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다. 선현들이 먹는 것을 바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어떻게 먹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겠는가. 라며 유교적 사회윤리가 지배하던 시대에서는 금기시되던 표현들까지 써가며 자신의 미식론을 펼쳤다.

도문대작은 짧은 글이지만 그 글이 담은 내용은 방대하다. 전국 각지의 특산 식재료 백 수십 가지를 분류해 수록해놓았다. 심지어 곰 발바닥과 사슴 꼬리는 어디 어디 것이 좋다고 올려놓았을 정도다.

역사적으로 허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단순히 최초의 한글소설은 홍길동전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가 쓴 호민론(豪民論)에서는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라고 했으며, 유재론(遺才論)에서는 남녀나 신분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것은 하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글이나 정치적 행위들을 보면 단순한 걸출한 문장가가 아닌 이상사회에 대한 동경과 절제와 금욕을 강요하는 성리학적 윤리관이 지배하는 숨 막힌 조선에 대한 반항과 변혁의 욕구를 홍길동전과 같은 소설이나 도문대작과 같은 글과 미식을 통해 풀어내고 저항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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