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아버지 따라 등대가는 길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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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아버지 따라 등대가는 길⑥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3.1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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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학교 뒤 언덕길을 올라갔다. 가쁜 숨을 고르느라 잠깐 멈춰 서서 등 뒤에 있는 바다를 돌아다보았다. 검푸른 바다와 그보다 연한 빛깔의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은 자로 대고 그린 듯 선명했다. 바람은 얼굴에 와 닿을 때면 차가왔지만 지나가고 나면 살짝 온기가 남았다.

언덕길이 끝나고 평평한 길이 나타났다. 길 양쪽으로는 키가 큰 동백나무들이 우거져 붉고 푸른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떨어진 동백꽃을 밟을 때마다 붉은 물이 무릎까지 차오를 것만 같았다.

-동백꽃은 향기가 없어서 새들이 이 붉은 빛을 보고 와서 꽃가루를 먹다가 꽃가루를 묻혀간단다. 그렇게 해서 열매가 생긴대. 신기하지?

-향기가 나는데요?

나는 동백꽃송이들을 향해 코를 킁킁거렸다. 분명 동백꽃에서는 해풍을 머금은 듯 비릿하고 가슴께가 환해지는 향기가 났다. 나는 이렇게 붉고 노란 수술까지 있는 꽃에 향기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우리 혜인이가 코가 아주 예민하구나. 혜인이한테서도 좋은 향기가 나는데?

아버지의 말에 나는 몸이 막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동백꽃 터널이 끝나자 섬 반대쪽으로 난 내리막길이 보였다. 섬 반대쪽은 햇볕을 많이 받아서인지 나무들도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다. 아버지는 내리막길 대신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금세 눈앞에 하얀 등대 탑이 꼭대기가 먼저 나타났다. 다시 한참을 더 올라가서야 등대의 전체 모습이 보였다. 등대를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푸른 하늘을 이고 서 있는 하얀 등대 탑은 눈이 부셨다. 위쪽 팔각형 돔 모양의 유리창은 햇빛을 바다를 향해 반사시키고 있었다. 하늘도 바다도 하얀 등대도 온통 눈이 부셔서 나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등대 아래 관사에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나왔다. 바람이 찬데도 아저씨는 런닝 셔츠차림이었다.

-니가 혜인이구나. 아빠랑 살게 돼서 좋지?

나는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했다.

-오늘은 딸이랑 지내라니까. 많이 낯설 텐데 같이 있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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