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18 계엄군 양민 학살 첫 고백...행불자 암살장 찾는 첫단추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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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18 계엄군 양민 학살 첫 고백...행불자 암살장 찾는 첫단추돼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3.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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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한 공수부대원이 무고한 양민을 향해 총을 쏴 사살했다고 당시 사망한 유족을 찾아 사죄를 했다.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41년에 처음 일이다. 민주화운동 시위와 전혀 관계없는 일반 시민을 공수부대원이 총으로 사살한 당사자가 41년만에 나타났다. 그러고 보면 총으로 사살당한 현장을 목격했다는 시민의 증언과 사살 현장에서 살아나왔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은 수없이 있어왔지만 총으로 사살한 공수부대원들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본 일반시민들은 왜 당시 공수부대원들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기록을 찾지 못하는 것이며 당시 명령을 받고 사살에 나선 공수부대원들을 왜 찾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에 따르면 지난 16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진압 작전에 참여한 공수부대 A(73)씨가 자신의 총격으로 숨진 고 박병현씨의 형인 박종수(73) 씨 등 유족에게 사죄하고 무릎을 끓었다. A씨는 1980523일 주남마을 총격 당시 상황에 대해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젊은 남자 두 명이 공수부대원을 보고 도망쳤는데 정지를 요구했으나 달아나길래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숨진 박 씨의 사망 현장 주변에선 총기 등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는데 계엄군이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그날 5월의 진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A씨는 앞서 2001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도 이런 내용을 증언했다.

이날 함께한 고인의 형 박종수씨는 "용기를 내서 찾아줘 고맙다""과거의 아픔은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며 자책감에 고개조차 제대로 못드는 A씨를 다독였다.

5·18 계엄군 가해자와 희생자 유족과의 특별한 만남은 41년을 뛰어넘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가해자의 용기있는 고백과 사죄, 유족의 포옹은 참된 용서와 참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계엄군 A씨의 이번 사죄를 계기로 당시 활동했던 공수부대의 행적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계엄군의 주력으로 꼽히는 7공수부대와 11공수부대의 유혈 진압과 학살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적은 광주항쟁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규명되지 못한 암매장과 행방불명자 등을 규명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5·18 당시 무고한 양민들이 계엄군의 마구잡이 총격에 의해 많이 희생됐는데, 이번 고백이 또 다른 가해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계엄군이나 가슴에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족 모두 피해자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출범 2년째인 조사위가 무고한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게 한 발포명령자와 암매장 숫자와 암매장지 등 밝혀낼 숙제다. A씨와 같이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의 용기있는 진술이 묻혀져 있는 진실을 끄집어 낼 것이다. 계엄군들이 역사의 화해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조사위의 설득 작업 노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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