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⑨]겔버스톤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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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⑨]겔버스톤 바닷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4.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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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아버지와 공항에서 어색한 이별을 하고 텍사스 휴스턴 공항에 도착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에 아버지는 금세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사람들의 폭력적인 시선들을 온몸으로 받았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곧 괜찮아질 거야. 당신도 익숙해질 거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남편의 말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마트에 가거나 은행에 가서도 나는 사람들의 시선의 그물에 갇혔다. 불신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마트 점원과 은행원은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젊은이들의 성적인 조롱과 멸시는 늘 나를 따라다녔다. 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남부 백인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남편은 자신의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윽박지르고 다그쳤다. 여러 번 유산을 한 끝에 다니엘을 낳았다. 그 사이 남편은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는 어쩌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만하고 성급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

남편은 출장이 잦았다. 친구들의 파티에 참석했다가 늦게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우리 집에서 파티를 열면 오히려 더 외로웠다. 은근히 한국을 비하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반박을 했지만 그들의 고정관념은 바뀌지 않았다.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우리 집에서 파티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네 살 된 다니엘이 밤늦게 경찰에게 발견되는 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있던 엄마였다.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고 다니엘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이혼에 동의했다. 남편이 얻어준 작은 스튜디오에 살면서 한 달에 한 번 다니엘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은 그 약속조차 자주 어겼다. 다니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알코올 중독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남편은 백인 여자와 재혼했다. 나는 한국계 2세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다니엘 앞에 다시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손이 무르도록 머리를 감겼고 청소를 했다. 하지만 남편은 다니엘과 영국으로 영영 떠나버렸다.

나는 다니엘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살아갈 이유마저 잃었다. 더 이상 스스로를 견딜 수 없던 날 겔버스톤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다니엘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장소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인적 없는 바닷가 개활지에서 차를 세웠다. 바다 위로 서서히 어둠이 내렸고 서치라이트가 바닷가를 훑기 시작했다. 그 불빛 속에 살아온 순간들이 영화 속 장면처럼 떠올랐다. 엄마와 오빠와 함께 했던 시간들, 다니엘이 앞니가 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시작하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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