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작가의 일기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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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작가의 일기 딜리버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4.21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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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시대

문보영 지음

민음사

2021년 4월 9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전공은커녕 글쓰기 강좌 한번 듣지 않고도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법이 있다. 바로 일기 쓰기다. 일기는 내밀한 혼자만의 고백이기도 하고, 각종 기록이 되기도 하며,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처럼 문학 작품으로 남기도 한다. 일기는 쓰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자유자재로 장르적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라 할 수 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 방구석이나 식탁 한 쪽에서 아무 때나 편리한 도구로 매일 써서 쌓이는 일기는 가장 가성비가 뛰어난 창작이기도 하다.

이렇게 써내려간 일기를 공개하거나, 남의 일기를 훔쳐 보는 기분으로 읽는 일은 일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만들어준다. 문보영 시인은 일기 딜리버리를 시도했다. 손으로 직접 쓴 일기를 구독자들에게 우편으로 부치는 신개념 문학 구독 서비스. 이것은 일기주의자 문보영이 스스로 창조해 낸 조어이며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렇게 딜리버리했던 일기들을 모아 단행본 일기시대를 출간했다.

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시인이 사랑하는 것은 시가 되는 일기, 소설이 되는 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기 그 자체인 일기라는 언급이 인상적이다. 재미있는 점은 일기시대에 수록된 일기들 대부분이 그가 직접 그린 방 그림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편집자 설명에 의하면, “방 그림은 대체로 그 구조가 동일하지만 시인의 기분이나 그날의 상태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며,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책상 밑과 옷장 속 혹은 창문 바깥에서 작가가 숨겨 둔 비상식량이나 용도가 무엇인지 모를 천사 조각, 그리고 상상의 친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책장에서는 카프카와 브르통과 제발트가 뒤섞인다. 그의 일기 속에서 방은 해리 포터속 필요의 방처럼 늘어나고 줄어들며 변한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일기는 자유로운 글쓰기다. 초등학생이 검사를 받기 위한 일기를 쓰듯 그날의 날씨와 사건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며칠 전의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날 읽은 책과 오래 전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 등 일기의 시간은 시공을 초월한다. 문보영의 일기시대는 남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묘한 즐거움에 덧대어 일기라는 공간이 어떤 자유와 재미와 성장을 제공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당장 예쁜 일기장부터 한 권 마련하고 싶어졌다면, 조만간 당신의 책을 출간하게 될 가능성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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