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 진압 제3공수여단 11대대 신순용 전 소령, 5·18 묘지 찾아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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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 진압 제3공수여단 11대대 신순용 전 소령, 5·18 묘지 찾아 사죄
  • 류용철
  • 승인 2021.05.2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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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암매장 양심고백 계엄군 41년 만에 5·18 묘지 사죄한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 진압작전에 투입된 제3공수여단 11대대 소속 지역대장 신순용 전 소령이 21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영령을 참배하고 있다.

[목포시민신문=유용철기자] 19805월 광주에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3공수여단 11 지역대대 신순용 전 육군 소령이 41년이 지난 2021521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그는 19805월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계엄군으로 참여한 지휘관으로 최초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그는 19805193공수여단 11 지역대대장으로 부대원들과 함께 용산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로 투입돼 교도소 방어작전, 광주 고립 및 봉쇄 작전 등을 수행했다.

차를 타고 접근하는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부하 대대원을 막지 못했고, 결국 3명이 숨지고 1명의 다리에는 관통상을 입혔다.

고속도로 인근 참호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나눠타고 순차적으로 접근하는 시민들에게 2시간가량 조준 사격해 30~40명의 사망자가 나고, 이들을 교도소 참호 인근에 암매장한 목격담도 여러 차례 증언하기도 했다.

신 전 소령은 "당시만 해도 내려올 때는 광주에 폭동을 진압하러 간다고만 알고 왔다""폭도라고 생각해 스스럼없이 행동하지 않았나 싶다"고 후회했다.

이어 "이후 사람을 죽이고, 묻는 꿈을 꾸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렇게 안 해도 됐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후회와 죄책감에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광주시민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이는 말도 했다.

1980520일 광주 금남로 4가에 배치됐다가 2만 군중으로 포위당했는데, 부대원을 그 자리에 앉히고 시민들 앞에 나서서 설득하자 시민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비켜 군인들의 퇴로를 열어주고 길까지 안내해줬다.

이날 5·18 묘지를 5·18 계엄군 지휘관으로는 최초로 공식 참배한 신 전 소령은 묘지 입구에서부터 "미안합니다"라는 사과를 수십차례 반복했다.

김영훈 5·18 유족회장은 "큰 용기를 내줘 감사하다""신 전 소령에게도 지난 41년이 얼마나 피 마른 시간이었을까 생각한다. 군은 지휘계통상 전두환의 지시를 거부 못 했을 것을 이해한다. 건강하시고 앞으로 화해의 자리 만들어보자"고 그의 사과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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