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露로 다시 피어나는 리듬(音律)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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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露로 다시 피어나는 리듬(音律) (23)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3.2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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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고수비(眼高手卑)라는 말이 있다.
눈은 높은데 손은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풀이하면 이론은 있는데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한자 숙어다.

“林田은 운림산방의 혈통(血統)으로 태어나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니 뭔가 틀려도 틀릴 것이여”라는 말에서 그 ‘뭔가’라는 것이 ‘이론(理論)’ 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理論이라는 것이 실기와 접점(接點)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은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아무튼 늦게나마 안고수비의 심오한 뜻과 그 이유까지 알아냈으니 이제는 원숭이 그림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 실기(實技)가 그 이론을 끌어들일 수 있을 때까지 노심초사 정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양화를 회화사적 측면에서 대칭해보면 어떠한 대상을 그린다는 행위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그 재료나 표현기법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다. 서양화는 남성적이고 동적(動的)이며 사생과 데생을 근간(根幹)으로 실사위주의 표현을 중시하며 명암과 원근의 차이를 색으로 나타내고 여백이 없다. 반면 동양화는 여성적이고 정적(靜的)이며 실사보다는 사의적(思議的)이고 관념적(觀念的)이며 그림 속에 어떠한 이야기를 담으려는 설명적인 요소가 內在내재 되어있고 명암보다는 선을 위주로 하며 그리지 안 했는데도 그런 것처럼 보이는 은은한 여백이 있다.

“야아 - 이런 것까지 썼냐” 할 정도의 상식적인 얘기들을 일일이 나열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그려왔던 운무산수(雲霧山水)의 시필(始筆)이 東, 西洋畵를 대칭시키는 과정에서 그 이론이 탄생했으며 여기에서 얻은 주제는 ‘動’ 이었고 그 주제에 따른 매체가 바로 ‘雲霧’였기 때문이다.
운무의 표현에서 제일 큰 핵심을 ‘動’이라고 한다면 動의 근원은 ‘리듬’에 있는 것이다.
나팔을 불었던 시절 그저 지나는 말로 흘렸던 “너는 음악성이 있는 놈이라 리듬(音律)이 있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하셨던 그 리듬이 오늘에 이르러서야 이론(理論)으로 부활(復活)하여 雲霧山水의 요소요소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구름, 안개, 새(鳥)
이 세 가지 ‘動’적인 요소들은 林田의 화폭을 끓임 없이 넘나드는 雲霧山水의 동체(動體)이며 반석(盤石)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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