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문화관광자원의 현대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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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문화관광자원의 현대적 해석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9.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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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87년 봄은 늘 매캐한 최루가스가 꽃가루와 함께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창경궁 가는 길목에 본사 사옥이 있었고 바로 맞은편 건물에는 신민당 당사가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종로와 청계천로 허름한 가게 구석에 몸을 의탁하며 퇴근 같지 않은 퇴근이 빈번했다. 당시 민주항쟁 대열에 필자가 섞인 것은 순전히 학창시절의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피 끓던 대학 시절, 가난이라는 굴레는 내 사고와 행동을 옭아매어 데모대열보다는 도서관에서 나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었고 그런 내가 무척이나 마땅치 않았다.

넥타이를 매고 87 민주항쟁 데모대열에 섞이면서 숨다가 보다가 했던 곳들이 종로의 레코드 가게였다. 이듬해 아내가 큰애를 임신했을 때 이 가게들을 자주 들락거리며 음반을 구입하였다. 큰애는 절대음감을 갖은 아이로 태어났고 나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그럴듯한 취미를 갖게 되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란 것이 처음부터 오늘날 모습과 위상은 아니었다. 먼 옛날에 왕이나 귀족 등 특수한 신분들만을 위한 음악으로 태어난 것도 많았다.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 특히 시민계층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폭넓은 팬을 확보하게 된다. 당시에는 현대음악이었던 것도 이렇듯 세월이 흐르면서 고전음악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운명한 그리스 민주화 운동가이자 작곡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곡을 쓰고 아그네스 발차가 불러 유명해진 기차는 8시에 떠나네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클래식급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17~19세기 유럽 특히 영국의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 유행했던 그랜드 투어도 마찬가지이다. 가정교사를 동반하여 길게는 몇 년에 걸친 여행을 하는 것이 상류층으로 행세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되었다. 이탈리아와 파리가 필수코스인 이 여행은 영락없는 현대판 문화관광이었다. 여행사들 버스에 새겨진 그랜드 투어라는 문구는 과거 유럽 상류사회가 지향했던 것 중 다분히 면()적인 측면만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몇 년 전 필자의 모교 국립부산기계공고의 역사관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비교적 짧은 연륜의 모교는 그러나 무시하지 못할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역사관을 살펴봤던 기억을 문화관광을 공부하는 지금 새롭게 곱씹어 본다. 근대화에 기여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모교의 위상에 견주어보면 이 역사관은 단순히 하나의 학교 역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이기도 했고 그 자체가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필자가 사는 이웃 마을 안농리는 한국동란 때 난민들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 마을 역사관이 있다. 내용을 조금만 보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름의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마을역사관을 만들고 옛 동네 공동우물과 서당을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관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으로 보았던 것들을 전시해두면 언젠가는 이것이 역사가 될 것이다. 시멘트로 발라버린 마을 실개천도 옛 모습으로 돌려놔야 한다. 많은 학교들이 사라지는 마당에 학교 건물 일부를 학교와 지역공동체의 역사관으로 꾸민다면 학교 역사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을 아우러 도시와 다름을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가문의 역사도 훌륭한 문화관광지원이 된다. 강진 백운동별서정원(원림)은 필자의 원주이씨 종택이다. 한 가문의 역사이며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소치 허유가 차와 학문으로 교류한 현장이니 문화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도시 안동은 이미 각종 종택과 서원 등이 훌륭한 자원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어 이것을 기반으로 또 다른 새로운 가치사슬을 만들어 내야 한다.

얼마 전, 진도와 해남을 끊어놓은 명량해협에 해상케이블카가 하늘을 이어놓았다. 여수, 목포에 이어 진도에도 설치된 케이블카는 관광객들에게 어떻게 차별화를 웅변할 수 있을까? 명량해전이 펼쳐진 과거의 현장에 케이블카로 덧씌운 것만으로 나음과 다름을 주장할 수 있을까? 자연과 역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현장을 차별적 스토리텔링화 해야 한다. 그리스 아테네를 시작으로 60여 도시가 지정된 유럽문화수도 전략은 우리가 문화관광도시를 지향하면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레이 필드나 브라운 필드를 개조하여 창의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오래된 물건이나 오래된 장소가 모두 문화관광자원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을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라고 했다. 호이징가의 말이다. 노는 재미가 곁들여진 문화관광이라면 의도적 문화관광객을 더 많이 불러모을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생명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랜드 투어에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학교·마을공동체 역사관을 어떻게 설립하고 차별적 운영을 할 것인지? 이런 사소해 보이지만 고유성 짙은 작업들이 현대적 의미의 문화관광자원이 되고 대한민국 문화수도에 다가가는 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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