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축제 몰려가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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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축제 몰려가기 유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4.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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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꽃의 계절이다. 봄꽃들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易 계사전에 天地之大德曰生이라고 했다. 천지(자연)의 가장 큰 덕은 만물을 살게 하는 것이란다. 또 하늘의 도는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天道, 無往不復). 봄은 한 번 왔다가 가면 영원히 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돌아와서 다시 만물을 살게 하므로 천지의 큰 덕은 生하는 것이다. 봄에 만물이 生하는 것을 두고 우리로 하여금 ‘春意’를 느끼게 한다고도 한다.

초의선사가 즐겨 썻다고 하고, 이후 다실 현액이나 그림의 제목으로 많이 쓰이는 水流花開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송나라 시인 황산곡(黃山谷)의 시(아래)에 나오는 것인데 春意, 즉 이른 봄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생명 에너지를 전하는 메시지이다.

萬里靑天(만리청천) 구만리 푸른 하늘
雲起來雨(운기래우) 구름 일고 비 내리네
空山無人(공산무인) 사람 없는 빈 산
水流花開(수류화개)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추사를 비롯한 다인들이 즐겨쓰는 또 다른 싯구(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에도 ‘茶香’과 함께 ‘水流花開’라는 ‘춘의’의 의미가 들어있다. 靜坐라는 말은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가 주창한 마음공부의 방법이다. 香으로 상징되는 차(茶)라는 것이 이런 ‘마음공부’가 찾는 ‘생명세상’의 진수를 전해주는 매개체이기에 차인들이 윗 문구를 즐겨 썼을 것이다.

위 시를 풀이하자면 “깊은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곳(靜坐處)에 반 쯤 차를 따라놓은 찻잔에 차향이 피어오르고(茶半香初)(차는 잔을 가득 채우지 않고 반 잔 정도만 따라야 그 위 나머지 반 잔 부분에 향이 고인다.), 이런 차와 차향이 발휘하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암시와 더불어, 사람 마음이 동하여 과불급 없이 가장 적절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妙用時), 천지가 제 자리를 얻고 만물이 자라는 春意(水流花開)가 느껴진다” 정도가 되겠다.

이른 봄에 춘의를 느낀다는 것은 얼었던 동토에서 환희의 생명기운을 느끼는 것이고 그것은 ‘자연과의 합일’이다. 이때의 ‘자연과의 합일’이란 자연의 생동 기운을 전수받는 것으로서 이 세상 어떤 보약을 먹는 것보다 심신의 건강에 좋은 것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이른 봄 산골 모퉁이에서 풍겨오는 매향을 좇아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여행을 즐겼고 그것을 탐매도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매향은 그만큼 이른 봄 선현들의 ‘살 맛’을 촉진하는 자극제였다.

요즘은 한 그루의 매화나무를 찾아 산모퉁이를 도는 사람도 없고 그 모습을 담아 탐매도를 그리는 사람도 없다. 그저 광양으로, 무슨 매실농원으로 달려가기에 바쁘다. 위에서 자연의 생명 발양 법칙은 한 번 왔다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春意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봄마다 눈녹은 물은 흐르고, 산골짜기에 홀로 유유히 피어있는 매화는 탐매도의 소재가 되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水流花開인데 뭐가 그리 급하여 한 곳으로만 몰려가는가. 선조들의 탐매여행에서 풍겨나는 기품처럼 이 봄의 생명 기운을 장중하고 여유롭게 맞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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