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의 희망편지] 운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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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의 희망편지] 운명에 대하여
  • 류용철
  • 승인 2021.12.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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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예전에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을 사랑할 테야"

- 빌리 홀리데이 <Come Rain Or Come Shine> 중에서

운명을 믿어야 한다면, 당신의 실없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는지, 이 질기고 질긴 인연의 끈을 차마 끊어내지 못하고 현생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바보처럼 당신을 믿기로 했습니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내달렸던 모든 순간들엔 진심이 있었습니다. 그 진심 속에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의 유치한 연애 테스트처럼, 운명을 찬양하는 마음이 매달려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만나게 된 데는 특별한 사유가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떠나가버린 당신을 에둘러 좋게 포장하려 했습니다.

운명을 믿느냐는 말장난에는 언제나 굶주린 사랑이 있었지만, 그래도 당신 앞에서는 애걸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에도 갑과 을이 존재한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나는 늘 당신에게 갑인 것처럼 굴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틀 속에서는 언제나 내가 을이었습니다. 혹시 내 작은 실수 때문에 당신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될까,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더욱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나만이 당신에게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그 귀속은 생각보다 답답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정신과 영혼은 온통 당신에게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날들이 좋았고, 모든 날들이 상처였습니다. '양보'라는 좋은 말로 당신에게 무한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누구는 '머저리'라고 하더군요.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것 말고는 제 지난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전에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그야말로 한없이 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시들어져 갔던 사랑은 애잔한 매듭을 지었습니다.

우리의 만남도, 우리의 이별도 모든 것을 영화처럼 아름답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만나 사랑하고 울적해졌지만, 그 속에도 배움이 있었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결말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 속에 배움은 없었습니다. 나는 또 누군가를 처절하게 사랑할 것이고, 또 바보처럼 서글프게 울 것입니다. 나의 사랑 방식이 그런 것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 '운명'이라고 이름 지어 버린 것일 테죠.

그래도 이런 바보 같은 사랑이라도, 나는 아직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에게 사랑을 배우고, 또 당신에게 아픔을 배우겠지만, 나는 또 한없이 내어주기만 할 테죠. 어느 날 당신이 다른 사람이 좋다며 떠나버렸을 때도 '왜 나는 그 사람보다 못할까' 하며 자책했던 밤들이 지나갑니다. 이제야 객관적으로 자신에게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시간이었더래도, 저는 그때의 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바보 같지만, 당신이었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음을.

홀연히 내 곁을 떠나버린 당신이 어느 날 불쑥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그 심경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받아주면 바보, 멍청이라는 주변의 말도 무색해졌습니다. 사랑은 역시 원초적인 감정에 매어있는 녀석입니다. 그 숱한 상처와 아픔마저도,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사랑의 기억이 덮어버렸습니다. 마치 밀려드는 해일에 쓸려가는 모래사장처럼.

온몸과 마음 상처를 안고 온 당신을 껴안으면서, 다시 또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내 곁을 떠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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