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축제속의 정체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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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축제속의 정체성을 찾아서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4.0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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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역사가 요한 호이징가는 인간은 호모 사피언스(Homo Sapiens)나 일하는 인간(Homo Faber)보다는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ce)이라고 규명하고 있다. 인간은 일을 통해 얻어지는 성취감보다는 놀이문화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축제는 지역문화의 완결체로 생명과 활력소를 공급해 주고 있으며 인간애를 확인하고 살아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느끼고, 인간의 생존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의 기원은 고대의 제의(祭儀)에서 출발한다. 생명과 활력이 자기들의 삶의 고장인 이 땅에 가득하기를 기원하고 초월적인 절대자에게 정성스러운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의 무한한 능력이 풍년을 약속하고 풍성한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에게 바쳐졌던 춤과 노래, 그리고 음식들은 신을 즐겁게 한 다음 제의 공동체의 믿음과 확신 아래 인간의 잔치가 되는 것이다. 축제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축제는 신화에 기인한 시적 환상으로 현실 세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노래와 춤 같은 예능적인 수단을 동원했고, 부수적이었던 예능은 축제의 요소로 놀이화되어,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겪은 사건을 경축하는 봉건의식인 제의 역시 그 성스러운 행위의 의미가 점차 놀이 속에 스며들어 융합되었다.

오늘날을 축제의 홍수 시대라고 부르는 까닭은 사회가 급격한 발전을 이루는 가운데 경제적인 풍요로움, 시간적인 여유 및 사회적인 안정에서부터 국민 각자의 개성화와 다양화를 추구하는 감성의 시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는 사회의 발전과 분화 정도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시대적인 산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축제가 없는 삶이나 사회활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일상적인 생활은 끊임없는 축제 활동의 연속선상에서 관찰될 수 있다.

최근 따스한 봄철의 향기로움과 더불어 지자체들은 저마다 지역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유달산 꽃 축제를 시작으로 영암 왕인문화축제, 신안 도초 간재미 축제 등 지역문화를 중심으로 봄 향기 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4월 축제의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축제는 아마도 벛꽃 축제일 것이다. 벛꽃을 주제로 한 유명 축제는 진해 군항제, 경주 벛꽃축제, 화개장터 벚꽃축제, 한강여의도 봄꽃축제 등이며 우리 지역에서 개최한 영암 왕인 문화축제의 주요 소재도 벛꽃이다. 따라서 4월이 되면 우리나라는 온통 벛꽃 축제의 물결 속에 축제를 만끽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봄은 왜 벚꽃의 봄이 되었는가.

벚꽃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설을 가지고 있다. 현재 벚꽃하면 대부분 왕벚나무를 뜻하는데, 이 나무의 원산지를 놓고도 한·일 간에 원조 논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왕벚나무를 소메이요시노사쿠라(染井吉野櫻)라고 부른다. ‘소메이’는 현재의 도쿄 도시마(豊島)구의 소메이촌(染井村)에서, ‘요시노’는 나라의 요시노산(吉野山)에서 각각 따와 식물학자 후지노(藤野寄命)가 1900년에 합성해 만든 말이다. 현재 일본 학계는 나라의 요시노는 후지노가 잘못 합성한 것이라며 도쿄의 소메이촌설(說)을 더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1914년 미국의 식물학자 윌슨이 일본을 방문해 왕벚나무의 자생지(自生地)를 물었을 때도 일본 식물학자들은 요시노산 또는 오오시마(大島) 등으로 대답해 도쿄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 한편 제주도에 선교사로 온 프랑스인 타퀘르 신부는 1908년 한라산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했으며, 1912년에는 독일의 식물학자 퀘흐네가 한라산 관음사(觀音寺) 부근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제주도 자생지설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벚꽃은 일본의 국화로 모두 인식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이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벚꽃이다. 또한 일본인들이 식민지시대에 한국을 영구히 식민지로 만들려고 벚꽃나무를 전국에 심었다는 설과 창경궁에 조직적으로 왕벚나무를 심고 창경원으로 격하시킨 후 일반에게 공개해 벚꽃축제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일본이 자기네 국화인 벚꽃으로 한국의 봄을 장식해 식민지화 하려고 했다면 그 속셈이 미웠던 것이지 벚꽃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가 벚꽃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배후에 벚꽃을 퍼뜨려 식민지화 하려고 했다면 꽃을 즐기는 마음이 편치를 못하다.

꽃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벚꽃을 퍼뜨려 한국의 봄을 사쿠라로 장식하려고 했던 침략의 야욕이 자꾸 떠오르게 되어 씁쓸하다. 아무리 왕벚나무가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국민들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고, 그렇다 한들 벚꽃이 원래 우리나라 꽃이라 어디다 대놓고 말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벚꽃의 수종이 십 여 종류가 넘는데다가 일본의 국화라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하여 없어짐이 없는 꽃’이라고 불리는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다. 여름 중에도 칠월이 되어야 피는 꽃이다. 하루에 몇 송이만 피우고 나머지는 내일을 위해서 아껴두는 꽃이 무궁화 꽃이다. 오늘 핀 꽃이 저녁에 지면 내일 아침에는 다른 꽃이 피어 꽃의 시절은 가을까지 연이어서 계승하는 끈기를 보여준다. 벚꽃처럼 요란한 꽃 잔치는 없다. 다섯 개의 꽃잎이 떨어져 있어도 근원은 하나다. 벚꽃이 일시에 흥했다가 일시에 멸망하는 단명함을 보이지만 무궁화야 말로 오천년 동안 외침을 당하고도 멸망하지 않은 끈기의 민족성을 대변한다고 보아야 하리라. 존재의 소외감 속에서도 연속성을 지향한다.

4월이 되면 우리나라는 벛꽃 축제 상춘객들로 인산인해가 되고 있다. 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지역 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체성 속에는 항상 무궁화가 있지만 벛꽃 축제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은 무궁화 축제를 향한 국민적 화합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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