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더디게 슬퍼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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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더디게 슬퍼하는 당신에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12.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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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여느 때보다 긴 새벽이었습니다.

슬픔이라는 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옴짝달싹 할 수 없었습니다. 상처 받았다는 그저 그런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픔은 더해지는 것이 아니고 곱해졌습니다. 날카로운 칼집이 되어 마음 한 구석을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어쩌면 누구도 휘두르지 않은 흉기를 제 스스로 가슴에 꽂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덤덤하게 살았습니다.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고, 오롯이 그 잘못이 내 것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못났기 때문에,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엉성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공들여 쌓은 탑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쓰러져버렸습니다. 그게 일이었든, 우정이었든, 사랑이었든. 저에게는 더없이 소중했지만, 소홀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허무하게 흩어져버린 날, 있는 힘껏 내 마음을 자해했던 새벽, 그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서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습니다. 착잡한 심정은 영혼의 가장자리부터 야금야금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며칠 동안 잎사귀를 갉아먹지 않은 한 마리의 굶주린 애벌레처럼. 망상이라는 이름의 벌레는 무자비하게, 속절없이 제 영혼을 먹어 해치웠습니다. 심장을 잡아먹힌 영혼은 방향을 잃은 채로, 뜬 눈으로 새벽을 흘려보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잘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고, 그저 막연하게 내 탓만 하고 있던 때입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들 해결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롯이 나 자신이 감당해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만큼 잔혹한 일이 있을까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것, 기댈 사람이 없는 것, 외로운 투쟁을 해야만 한다는 것.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슬픔으로도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몇 날 며칠씩 펑펑 울어버리면 개운할 것 같은데, 눈물 따위 흐르지도 않았습니다. 목이 쉴 때까지 억지로 노래를 불러보기도 하고, 하루 종일 귀가 터져라 요란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퍼즐을 끼워 맞춰도 보고, 슬픈 영화를 보며 억지로 눈물을 짜보기도 하고, 머리가 새하얘질 때까지 달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모를 때, 저는 정작 울지 못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긴 새벽이 찾아왔습니다. 아무리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날은 유독 심해 속에 들어간 것처럼 차분해졌습니다. 오히려 차분해지니, 슬픔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그저 눈만 감고 있어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감정을 터뜨릴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막상 눈물이 나오려고 하니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베갯잇이 축축해지기 시작하니,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게 싫었습니다. 마음을 굳게 다 잡아왔던 게, 한 순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렇게 울 수 있을 때, 마음껏 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상은 단 한 번도 내게 울지 마라고 다그친 적이 없었지만, 오히려 나 자신이 관대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혼자서 강인하게 살아야 하기에, 슬픔에 젖어 있으면 한없이 우울해지기에, 그 수많은 "때문에"로 저를 울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저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더디게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세상에서 수많은 "때문에"로 울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무너져보기도 하고, 울어보기도 하고, 밑바닥까지 드러내 보이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굳이 감정을 숨기고 참지 않았으면 합니다. 억지로 해소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내 몸을 맡겼으면 좋겠습니다. 부담은 가끔, 그런 식으로 사라지기도 했으니까요.

 

감정을 꾹 눌러온 당신, 오늘 새벽 갑자기 예기치 못한 슬픔이 밀려온다면, 가슴을 열어 맞아주었으면 합니다. 그 한 번의 울음이 어쩌면 내일을 힘차게 걸어갈 힘을 안겨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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