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민신문]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동생들에게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이 찰나의 시간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남들은 허황된 꿈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품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직장에 발 묶여있지 않은 지금, 이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텅 빈 응원같이 보였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 <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 중에서
오랜만에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연히 집 근처에 왔는데 언니가 생각나서 연락했단다. 허심탄회하게 얘기나 한 번 털어보자고 잡은 약속이었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했던 시간은 서로에게 말 못 할 비밀만 만들었다. 털어놔도 딱히 문제가 없는 말들을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구하며 지냈다. 꼭 해야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꼭 감추고 있을 만한 일도 아닌 것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의 고민들부터 털어냈다. 이때 언니는 어떻게 했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대단한 악력으로 서로를 붙잡았다.
꼭 감춰두었던 계획들을 우박처럼 쏟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은, 타인에게 나의 계획이나 고민, 걱정들을 털어놓는 게 늘 부담이었다. 나의 걱정만큼이나 쓸데없는 말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것들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로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슴속에 끙끙 앓다, 힘들면 한 번씩 글 속에 털어놓는 것이 나의 스트레스 관리법이었다. 그런 감정과 스트레스를 마음 놓고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동생이었다. 동생도 나처럼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꽉 막혀 있었던가. 동생을 만나자마자 봇물 터지듯 흘러나온 이야기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혼재했다. 그 속에는 담담한 척했지만 애써 억누르고 있던 불안감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 그래도 언니는 글을 잘 쓰잖아?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 그런데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건지. 단순히 내가 책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글을 잘 쓴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그래서 자꾸만 검증받고 싶어 했던 것 같아. 끊임없이 필사하고, 작품을 투고하고, 책을 읽고 분석해. 어떤 날은 영화를 보고 있어도, 구성을 해체하는 내가 보이더라. 그래도 아직까지 불안해. 내 실력에 대해서도 말이야. 정말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있는지를.
내 이야기를 듣던 동생은 무릎을 딱 쳤다. 자신도 언젠가 그런 시기가 있었다고 말이다. 그럴 때 동생도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보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단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동생은 두려움 따위는 다 내려 앉히고, 당당함으로 무장한 채 나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그걸 견뎌냈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동생이 자신의 실력 증진을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해왔는지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 힘들겠다. 아무래도 언니는, 지역 한정이 아니라 전국의 독자들을 보고 하는 거잖아? 책이라는 게 말이야.
─ 그런가. 밥벌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아직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자신감 같은 게 부족한 것 같아. 당당해지려면 나에 대한 확신부터 갖는 게 필요할 텐데 말이야.
이미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방황하다 최근에서야 방향을 찾게 된 것이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꾸준히, 꽤 오래 버텨 나갈 것.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오히려 지치지 않고 나아가기를 바랐다. 조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일찍 해결되는 일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차분하게, 들뜨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데, 그래도 가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향은 알고 있다. 불안할 때 꾸준히 자신을 연마하여 두려움을 없앤 동생처럼, 나도 언젠가 내 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 날이 올 것이라는 걸. 그때까지 조급하게 생각하며 자책하기보다는, 뭉근한 마음으로 나를 가꾸는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잘 해낼 수 있을지 답은 알고 있으니까. 그걸 이끌어가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마음을 또 견고하게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흔들리지는 않지만, 가끔씩 지칠 때가 있다. 그러나 지쳐있으면 더 느리게 돌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안다. 지칠 때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