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21세기에 읊는 신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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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21세기에 읊는 신귀거래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2.1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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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나 돌아가련다. 논밭이 묵어 잡풀이 우거졌는데 내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으랴라고 귀거래사는 시작된다. 귀거래사는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을 등지고 변치 않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읊은 산문시라는 건 아시는 바와 같다. 당시 도연명의 벼슬이 현령이었다고 하니 과히 높은 벼슬아치는 아니었다. 나이가 41세인 것이 조금 걸린다. 천성이 벼슬살이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게다가 상급자의 지시가 못마땅하다고 여겨 내친 김에(?) 직을 그만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남자가 성질이 나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현령급 벼슬아치가 직을 내려 놓는다 해서 크게 놀랄 일도 아니고 막아설 일 또한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도연명은 은둔을 선언하는 시를 읊으며 낙향을 하게 된다.

필자가 귀향을 한 지도 벌써 8년째가 되었다. 도연명처럼 속세와의 절연을 선언하는 거창함은 없었다. 하지만 귀향 과정에 비록 타의가 크게 작용하였을지언정 어찌 각오란 것이야 없었겠는가?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소위 환경지킴이를 모델로 그렸다. 자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지금 생각하니 이거야말로 거창했다. 더불어 잘 사는 마을공동체도 꿈꾸었다. 폐교 위기에 몰린 모교도 잘하면 내 손으로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과대망상도 있었다. 화폐 경제에 의존하는 삶을 최소화한다면 기본소득 일백만원으로 살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아내의 설득에 나는 무장해제를 당했다. 그 일백만원은 견과강정을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는 소박한 플랜도 곁들여졌다. 농사일을 싫어하는 나에게 강정 기본소득 플랜은 결정적인 한방이었다. 어쩌면 거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소박함이 오히려 강렬한 인간적 소구력을 갖고 있었나 보다. 촌놈으로 태어나 도회지 삶의 팍팍함을 아는지라 다행히 두 아들에게 각자 비빌 언덕은 마련해주고 이삿짐 따라가는 강아지 마냥 귀향하게 되었다. 여전히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귀향길 기분은 확실히 들떠 있었다. 8년이 거의 지난 지금, 몇 푼 되지 않은 귀향정착금은 그대로 남아있다. 견과강정으로 꿈꾸었던 기본소득이 예상보다 더 창출된 덕분이다. 그보다는,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순수한 평생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무리없이 등친 덕분이라고 해야 더 옳은 표현일 것 같다.

기본소득이 주는 매력은 상당하다. 각자 바라는 소득 크기는 다르겠지만, 필자가 누리는 정신적 안정감은 적지 않다. 남들이 보면 코웃음 칠 수준이지만 애초부터 대장동 수준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 수준이 낮았다. 쉽게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정신적 여유는 주변의 삶을 돌아볼 여유로 선순환된다. 도시인이 정년을 하면 시골에서 전원의 삶을 꿈꾸는 이가 많다. 심지어 로망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실제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의 삶은 결코 녹록지가 않다. 곳곳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 보인다. 몇 년 전 필자도 독거노인으로 인정되어 김치 한 박스를 전달받은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지만 기본소득이 확보된다면 주변 일을 무심해 하지 않을 것이다. 쥐꼬리만한 장학금을 후배들에게 내민 지도 햇수로 6년째, 마을학교 운영은 4년째를 맞는다. 역사문화탐방과 음악밴드 활동은 아이들에게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고 타고난 문화자본을 키워갈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런 모든 것들은 기본소득이 나에게 주는 또 다른 망외의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귀향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새로운 귀거래사를 읊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망설임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귀향을 하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이 많은 조카가 귀향을 하였다. 어설프게 맘 먹고 있던 차에 나의 귀향에 고무되었다고 실토하였다. 그 조카의 귀거래사는 무엇이었을까? 고향살이를 꿈도 꾸지 않았던 친구의 아내는 우리가 사는 모습에 자극이 되었는지 고향에 오고 싶어 했다. SNS를 통해 내가 사는 모습을 접한 몇몇 친구들도 심심찮게 시골 땅값을 문의한다. 그리고 제법 구체적인 질문을 건낸다. 시골살이 선배격인 나의 결단에 찬사와 경의를 표하는 이도 있다. ‘선택의 문제일 뿐이야’. 나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누구든 선택만 하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떠밀려 귀향했다는 말은 국가기밀이다. 내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지만 혹여 그들의 결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말하지 않았다고 그들이 모를 리 없겠지만 말이다.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려는데 왜 고민이 없겠는가? 날씨 흐느적거리는 날 친구에게 파전에 막걸리 한잔 먼저 청할 수만 있다면 용기를 내도 된다고 내 모범답안을 흘려준다. 적당히 소독된 목구녕에서 남도소리 한 대목이 나온다면 신선이 따로 없다. 귀거래사의 다른 표현일게다.

귀거래사는 글이나 말로만 읊는 것은 아니다. 요즘 내가 쓰는 귀거래사는 정체성을 살린 지역공동체의 포지셔닝이다. 손길이 미치지 않았거나 미진했던 분야이다. 포지셔닝의 기본적인 접근방법이 무엇인가? 잭 트라우트의 말을 빌려보자. ‘기존의 것과 다르거나 전혀 새로운 뭔가가 아니다.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조종하는, 말하자면 기존의 연결고리를 새롭게 다시 엮어내는 것이다’. 그렇다! 진도가, 목포가 갖고 있는 문화와 예술자원을 어떻게 펼쳐 보일 것이냐가 내가 고민하는 포지셔닝의 핵심이다. 오늘도 귀향을 준비하며 자신의 포지셔닝을 고민하는 벗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읊게 될 신귀거래사도 궁금해진다. 막걸리가 어울리는 날이라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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