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김도희 목포해양대 교수] 수위 아저씨와 아파트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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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김도희 목포해양대 교수] 수위 아저씨와 아파트 주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2.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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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목포해양대학교 환경생명공학과)

[목포시민신문] 기다리고 기다리던 눈이 내렸다.

세상이 설국으로 변해서 좋긴 좋은데, 한파로 길이 얼어 사람도 자동차도 조심조심. 당장 산책도 못해 꼼짝없이 갇힌 상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콕 한지도 오래인데 눈까지 쌓여 외출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린 시절,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집 앞길을 쓸었고, 힘을 모아 동네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곤 했었다. 아버지를 도와 마당과 골목길의 눈도 치웠다. 동네 아이들과 눈싸움, 눈썰매 타기, 눈사람을 만들면서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았었다.

이제는 아이처럼 눈밭에서 뛰어 놀 수도 없고, 답답하고 몸도 근질근질하여 눈이라도 밟아 볼까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니 수위 아저씨가 외롭게도 혼자서 눈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와줄 겸 운동도 할 겸 좀 쉬세요. 저와 교대로 하시죠?” 하면서 눈삽을 건네주기를 부탁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괜찮아유짧게 응답하고는 계속 하던 일을 하신다. “제가 운동도 할 겸 심심해서 그러니 저에게 맡기시고 좀 쉬세요.” 라고 사정을 하다시피 다시 부탁을 했으나 아저씨는 요지부동. 고집을 접고 눈삽을 건네 줄 법도 한데 건네주지 않는다.

알고 보니 눈삽 두 개 중 하나가 부러져 있었기에 남은 것마저 부러뜨리면 곤란하셔서 그러시는구나! 짐작을 하고 제가 눈 치우다 눈삽을 고장 낼까 그러시죠? 조심해서 할게요.” 하자 이번에도 넌지시 웃으시기만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신다.

혹시 내가 막무가내로 눈을 치우다가 자칫 하나밖에 없는 눈삽마저 고장을 낸다면 어떻게 해. 이 눈길에 사러 갈 수도 없고. 당장 치워야 할 눈은 계속 쌓여 가는데. 눈을 치우지 않으면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질 거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니 아저씨의 행동이 십분 이해되었다. 참으로 소신 있고 책임감 있는 아저씨구나 아마도 평소에 철저하고 성실하신 분 이겠구나 짐작하였다.

하고 싶은 일을 거절당한 나는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 쓰레기 집하장에 방치한 부러진 눈삽을 챙겨 제가 가지고 가서 고쳐보겠습니다.” 말하고 집으로 들고 왔다.

보기보단 나사못도 빠지지 않고, 눈삽의 목 부분이 부러져서 안쪽에 막힌 나무도 빠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쉽게 부러지는 재질이면서도 수리는 어렵게 만들어진 구조였다. 참으로 조잡하기 짝이 없는 제품의 눈삽. 분명 쉽게 고장이 나서 자주 사도록 만들어진 물품이구나 싶었다.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막힌 나무를 드라이버와 망치로 정을 치듯 조금씩 파내어 어렵사리 고칠 수 있었다. 다시 눈 쌓인 길로 돌아가 수리한 눈삽으로 눈을 치우니 생각보다 힘이 들고 땀이 났다. 수리한 눈삽으로 쌓인 눈을 치우고 수위 아저씨에게 눈삽을 건네주고 기분 좋게 귀가했다.

시간이 지나 13층 아파트의 창문을 열고 조금 전 내가 깔끔하게 눈을 치운 곳, 안전해 보이는 집 앞길을 내려다보았다. 내 집 앞 눈 치우기로 작은 봉사를 했나 싶어 부듯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조금 전에 만난 수위 아저씨가 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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