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 김형만의 한국유학이야기-44]조선 유학의 반성과 새로운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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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김형만의 한국유학이야기-44]조선 유학의 반성과 새로운 모색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2.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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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직시하고 인근 학문과 융섭으로 외연 학장 필요
학문 간 영역 넘어 현세·실천적·인본주의 정체성 회복
미래적 ‘대안유학(代案儒學)’의 새로운 길 모색 절실

[목포시민신문] 조선은 유교를 국시(國是)로 입국(立國)하여 유학을 존숭하여 제도 문물은 물론 정치의 이상과 규범, 국민의 지도 이념 및 사회생활의 일체 양식과 풍습 또한 유학사상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자(儒者)들을 우대하고 등용하니 문운(文運)은 융성하고 교화는 양일(洋溢)하여 치적(治績)의 찬란한 것이 한·당과 송나라를 능가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 초·중엽의 일이요, 사화를 거듭하며 선비들이 원기를 상실하여 조정에 나아가 경세제민(經世濟民)에 힘쓰기보다 산림에 물러나 고답자수(高踏自守)하며 리기심성(理氣心性)의 성리(性理)를 논하는 것을 학자의 일로 아는 사풍(士風)이 일더니, 거기에 더하여 당쟁이 심화하며 유학의 폐풍은 나날이 더하여가고, 정권을 담당한 양반사대부들은 무능과 탐학, 부패와 정쟁으로 치달아 종말에는 그 말폐로 말미암아 기울어 가는 국운을 돌이키지 못하고 밀려드는 외세에 나라가 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유학(성리학) 자체의 잘못인지 조선 사대부들의 잘못인지, 다시 말하면 유교의 본질적인 문제인지 응용의 문제인지 하는 것은 다각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특히 조선에 있어서는 주자학 자체에 내재한 공소(空疏)한 관념적인 문제와 사대부의 그에 대한 교조적 추종 및 배타성의 문제가 함께 야기한 잘못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선 첫째로, 본디 유학사상에 내재된 벽이단론에 더하여 주자학의 비판적 배타성이 여타 사상과의 조화나 견제를 이루지 못하고 독주하는 데서 오는 오만과 독선이 결국 스스로 자정할 능력을 잃자, 그에 따라 집권사대부 또한 부패와 탐학으로 치달아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구학에 몰아넣어 지탄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경학(經學) 중심의 원시유교의 실천적이며 경세치용적(經世致用的)인 학문과 민생(民生)을 경시, 외면하고 관념적·사변적·이론적인 공소한 성리학 즉 주자학의 철학적 탐구에 열심이었으나, 당면한 국가와 민생의 문제에 하등의 실공(實功) 실적(實績)도 없이 공리공담을 일삼으니, 선비사회의 풍조가 자연 독선기신(獨善其身)과 문약(文弱)으로 흘러, 저 송나라에 문운이 성대하게 열리어 주자학을 꽃피워 냈지만, 이민족에 허구한 날 시달리다가 결국 망했던 전철을 망각한 점이다.

송대의 유학자들이 도학(道學)을 성취시켰던 것은 위정자들이 문운을 개척하여 학문을 존중하고 학자를 우대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학자들은 자유로이 학문을 닦고 초연한 인격을 갖출 수 있었으며, 또한 현실정치를 비판하거나 극간(極諫)하는 사명감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송대의 도학도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도학자들이 추구한 이상은 너무나 형이상학적이고 개인중심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몇몇 사람의 정신적·도덕적 성취는 대단히 승화된 것이었지만 일반적으로 형이하학적인 현실문제와는 괴리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도학은 일상생활과 경세치용의 측면을 소홀히 함으로써 요··원과 같은 이민족의 침범을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비축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점은 지시식세(知時識勢)를 바탕으로 수시처변(隨時處變)을 중히 여기는 유가의 시중지의(時中之宜)에도 어긋나는 것으로서 송명리학(宋明理學)이 저지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우리에게도 은감(殷鑑)이 되는 것이다.

오천년이라는 유구한 민족의 역사 속에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온 주인공인 우리네 백성의 입장에서 그 역정을 통관(通觀)해 본다면 오히려 그 반성과 새로운 모색에 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고에 우리는 고유의 신도사상(神道思想)에 유불도(儒佛道) 삼교를 포함하는 화랑도와 이를 계율화한 세속오계, 원효의 화쟁사상 등에서 보듯이 각각의 사상이 서로 회통하고 서로의 장점을 드러내며 서로를 보완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려 말에 원시 실천유교와는 달리 배타성을 띤 신유학(주자학)이 수입된 이래 여타 사상을 배척함으로써 조선에 들어 학문과 사상계를 독점하게 되었다.

유교는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유입되어, 조선 시대로 말하자면 유교를 국시로 하여 향촌에까지 학교를 세우고 서적을 보급하고 향약을 실시하는 등 학습과 교화에 힘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을마다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교양을 쌓느라 현송(絃誦)소리가 그치지 않아서, 비록 상민 이하 천민들에게는 교육의 기회조차 제한되었지만, 이 땅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효제충신(孝弟忠信) 예의염치(禮義廉恥) 등 인륜(人倫)의 도리는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덕목으로 알았던 것이다. 우리는 시련과 고난을 많이 겪어온 민족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외적의 침범도 많았으나 그때마다 백성들이 내 가족 내 고향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서 맞서 싸워왔던 것은 유교의 교화가 또한 그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위정자들의 무능과 탐학으로 인한 고통은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민초(民草)들은 이루다 열거하기도 힘든 온갖 기만과 우롱, 압박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남아 역사를 지탱해오며 민주(民主)의 나라를 이루었으니 참으로 존경스럽고 대단한 민족이 아닐 수가 없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간은 역사 이래, 그저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길을 걸어왔다. 문화니 문명이니 하는 것도 잘 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고, 사상이니 주의니 하는 것도 잘 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유학은 인간을 주체로 하는 인간 중심의 철학이고 인간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덕적 신념 체계이다.

따라서 민생을 도외시하는 정권은 국민에게 하등의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유교사상의 탐구와 실천이 이 시대에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가의 문제 또한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월정(月汀) 정주상 선생의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 ㅡ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다)'
ㅡ 마음 밖에 이치가 없고 마음외에 일이 없으니, 세계의 萬事萬象은 마음이 드러낸 것으로서, 우주의 모든 법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며 마음 밖에 따로 있지 않다는 말.

유학은 선진(先秦)시대 이후로 제자(諸子)와 백가(百家)를 받아들이고 아우르는 융섭을 통해 그 지평을 넓혀 현실정치에 적응하며 수천 년을 치세(治世)의 학문으로서의 굳건한 위치를 점해왔던 것이다. 거기에는 과실도 있었으나 학문보다는 그 운용하는 사람에 의한 잘못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시대의 유가를 보면 유교는 이제 유학을 강명하며 실천하는 유학자, 도학자는 그 명맥이나 겨우 유지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다만 유교를 철학으로 연구하는 유가철학자만이 겨우 유학을 떠받쳐가는 듯이 보인다. 철학이 그 시대 인간과 세계를 문제로 삼아 이를 해명하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이 시대의 우리의 유가철학자들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철학적 사고, 나아가 어떤 유가적 현실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조선 성리학이 걸어온 길처럼 민본(民本), 민생(民生)은 제쳐두고, 다만 과거로 회귀하여 그 사상과 학문을 파헤치고 천편일률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학자의 소임을 다한다고 서로를 고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나 않은지 심히 걱정스럽다.

국가를 경영하는 현실 정치론으로서의 유학은 그 안에 이미 오랜 세월 법가 도가 등의 사상을 끌어안아 스스로 외연을 넓히며 학문과 사상을 아우르고 정치를 담당해왔다고 생각된다. 이제 오늘날 냉혹한 국제 정치질서 아래에서의 유학은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시대정신에 걸맞는 통권달변(通權達變) 인시제의(因時制宜)의 시중지도(時中之道)를 구현하여야 할 때인 것만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대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근 학문 사상과의 융섭으로 외연을 학장하고, 학문 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현세적(現世的) 실천적(實踐的) 인본주의(人本主義) 유학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대안유학(代案儒學)’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물론 유학의 순수철학적 연구도 병행하되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유학은 역() 철학을 바탕으로 수시처중(隨時處中) 즉 시중(時中) 사상에 입각해 시대의 변화에 알맞게 대처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성(), (), (), (), (), (), (), (), () 등은 개인과 개인 사회와 국가 세계 천지 우주까지도 감통(感通)할 수 있는 유가의 덕목이자 인륜 도덕의 기초이다. 다만 이러한 것들은 당면한 그 시대 상황이나 여건에 적절하게 응변(應變)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하며, 택선고집(擇善固執)하는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시대정신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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