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의 희망편지] 수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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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의 희망편지] 수난에 대하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3.0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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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종종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는 사람이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에 대담집 출간을 준비하는 어느 기획자처럼, 시간 때우는 질문 놀이라는 포장 아래 내 가치관을 헤쳐보는 듯한 인터뷰를 쏟아냈다. 평소 생각했던 것들은 고민도 없이 쓱 내뱉었지만, 때론 꽤 오랜 시간 골몰해야 하는 주제들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그 질문이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언젠가의 나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대해 누구에게나 잘 털어놓았다. 실은, 누군가에게 힘듦을 털어놓을 때는 지나간 과거가 아닌, 지금 당장 마주한 현실이었다. 며칠 어떤 고민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간관계는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무척 힘이 들 때는 두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그냥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던 걸까.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는 유독 견디는 시간에 약했다. 힘든 나날이 하루빨리 흘러가길 바랐다.

누군가에게 힘듦을 토로하고, 때론 기대기도 하면서 잘 지내왔던 내가 부쩍 고민상담에 시들해진 것은, 사람 간의 위로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힘듦에 대해 털어놓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아픔을 타인이 알아주리 만무한데, 되려 홀로 상처를 받아서다. 누군가에게 힘듦을 털어놓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힘듦을 지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작 네 얘기 듣는 것뿐인데, 뭐 힘들겠어? 처음엔 다들 고민을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심지어 나 조차도 흘러가는 말로 힘들 때 얘기해, 라며 말하기도 했다. 그 말속에 위선이 있다. 아무도 타인의 힘듦을 짊어질 수 없었다. 털어놓는다고 해서 완전히, 개운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힘듦은 털어놓으면 털어놓을수록 더욱더 곱씹어져, 같은 생각과 틀에 갇히게 되었다. 타인의 고민,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증에 시달렸다. 고민을 실컷 털어놓으라고 말한 사람은 난데, 점점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고만 싶었다.

언젠가 나는, 고민을 털어놓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던 적도, 쉴 새 없이 고민만을 털어놓는 사람이었던 적도 있었다. 거기서 깨달은 것은 '위로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계를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도 불러보고, 달리기를 하며 정신을 단련하기도 했다. 모두 다 좋은 방법이었지만, 나는 조금 더 직관적으로 나의 힘듦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신을 치유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는 눈을 감고 글을 쓰며 눈물을 흘려냈다.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슬픈 음악을 들으며 한참 앉아있기도 했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글로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인들은 때로 그 행동이 가슴속에 우울감을 담아내는 행동이다, 좋지 않다, 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내 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그건 정말 오롯이 나 자신을 치유하는 글이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읽히지 않아도 되는 글이었다.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면서, 내 마음을 다 쏟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문장을 썼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 따위도 없었다.

수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인생에 짊어진 고통의 무게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버티기 버거운 나의 힘듦이 타인에게는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기댈 수 있을 때는, 기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수난을 감내해보고 싶다면, 마음을 수련하고 단련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 그것이 꼭 글쓰기가 아니어도 된다. 나만의 마음 다스리는 법을 찾는다면, 닥쳐올 수난도 침착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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