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김도희 목포해양대 교수] 돼지 수육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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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김도희 목포해양대 교수] 돼지 수육을 먹으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3.1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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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 수육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는다. 부드러운 식감과 육류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평소엔 혈압이 오르던 말든 생태계가 파괴되든 말든 고기 맛에 빠지는데, 오늘은 문득 고기 먹기를 멈춘다. 얼마 전에 본 돼지 사육장의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돼지농장의 악취를 조사할 수 있느냐고 문의가 왔었다. 복합악취 조사는 사람의 후각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조사 결과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아쉽게도 현장을 답사하고 관련자들을 만난 후 조사를 포기하였다. 마을주민과 돼지 사육자 간 예민한 신경전과 충돌이 있었으며, 조사자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아 조사 시간과 채취 지점을 정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둔 지 보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마을 모습이 생생하다.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4곳의 돼지 사육장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하였다.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서로 싸우는 모습이 생각난다. 마을 노인에게 당신들은 생활권이지만, 나에겐 생계권이다.“ 라고 거칠게 항변하던 돼지사육자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오십 년 전, 시골 동네의 가정에는 돼지를 키웠었다. 돼지 냄새를 맡으며 살았었다. 싸우고 있는 그들도 오래 전엔 서로 화목하게 지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돼지를 잘 키울 것인가 서로 의논하며 살았다. 돼지가 잘 잤는지? 배가 고픈지? 살폈고, 먹다 남은 음식을 챙겨 주곤 하였다. 혹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갔을 때에는 서로 힘을 모아 돼지를 찾아다녔고 집으로 모셔 왔었다.

돼지와 함께 동거 동락했던 사람들! 복덩어리 돼지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아 집안 경제에 도움을 주었을 텐데, 지금은 그 돼지로 인해 사람들 간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있다. 자식들과 손자들마저 악취 때문에 시골 마을에 오기를 꺼려하고, 민원과 조정으로도 해결을 못해 결국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서로 양보하고 화해할 수 없어 고향마저 등지고 있는 것이다.

냄새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다르고,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하루에도 달라진다. 냄새라는 것이 기분이 좋고 향기로우면 향기요,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면 악취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경우에 따라서 향기이면서 악취로 변한다. 향긋한 냄새를 풍기면 향기요 사랑이고,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면 악취인 것이다.

지금 이 시골 마을에서 풍기는 냄새는 분명 악취다. 오래 전에도 이 마을에는 분명 같은 냄새가 풍겼을 텐데. 어떻게 문제없이 살았을까? 이집 저집에 돼지우리가 있었고, 여기 저기 소, 돼지, 닭 거름 더미가 있었는데. 퇴비 거름을 안겨주는 이로운 냄새였기에 당연시 했을 것이다. 이 불쾌한 돼지우리의 냄새를 어떻게 하면 향기로 바꿀 수 있을지? 바람 따라 오고가는 냄새, 보이지 않는 냄새를 어떻게 막을 것이며, 어떻게 붙잡을 둘 수 있단 말인가?

실제 생활의 불편을 느낄 정도의 냄새가 나더라도 조사를 통해 법적 기준치를 초과하는 결과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나는 조사를 포기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피해 증거를 수집하고 재판부에 마을의 상황을 잘 제시하라고 조언을 하였다. 재판부에도 담당 재판관님께서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보시면 판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는 글을 전하였다.

우리는 현재 각 가정에서 돼지를 키우던 시절보다 더 자주 더 쉽게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 이는 돼지 사육기술의 발전과 돼지사육자들의 노고 덕분이 아닌가. 한편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악취 없는 환경, 깨끗한 공기와 같은 환경의 질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나의 편안함을 위해 조사를 포기한 것이 잘한 것인지?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조사를 했어야 했는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조사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마을 사람들과 그 돼지 농장의 모습이 잊어지지 않는다. 삽겹살, 김찌치게, 돼지수육과 같은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어디엔가 돼지 사육장이 존재해야 하는 것. 환경권과 생계권 사이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미워하고 싸우는 모습에 돼지 수육을 먹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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