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새벽 기차를 타게 한,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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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새벽 기차를 타게 한, 반가사유상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3.1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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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오랜만에 새벽 기차를 탄다. 입춘이 지났는데 흰 눈발이 새떼처럼 하늘 위를 맴돈다. 달리는 기차 창가에 매달린 물방울들도 달리기를 한다. 투명한 작은 공 같은 물방울들은 어디로 흘러가나? 코로나 상황이라 몇 번을 망설였다. 미술잡지 한 조각에서 본 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2사유의 방전시관 앞에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전시관 안에는 반가사유상 두 작품만 오롯이 전시되어 있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금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반가사유상을 접하기 전에, ‘사유하다라는 말을 먼저 생각한다. “사유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다.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을 하다라는 국어사전의 말보다 더 심오한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금동 반가사유상은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라고 한다. 19621220일에 국보 제83호로 지정되어, 높이 93.5cm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자의 미소를 지녔다고 한다. 사진 한 장으로는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전시관은 조금 어두우면서도 은은한 조명이 있어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깊이 사색할 수 있게 한다. 유리관이 없어서 사방에서 자세히 바라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 동안 백제 금동대향로를 가장 아름다운 우리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가사유상은 아름다운 유물로 그치지 않고, 마치 살아있는 부처를 대하는 것 같다. 지그시 감은 눈빛과 날렵한 콧날, 꽃 피우듯 볼에 살짝 올린 손가락, 한번 만져보고 싶은 귀여운 발가락, 섬세한 옷 주름 등 모든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균형이 잘 잡혀있다. 무엇보다 일품은 뒷모습이다. 뒤에서 바라보는 어깨와 허리선의 곡선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등 뒤에서 살며시 안아보는 상상만으로도 온갖 시름이 다 내려가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금동 불상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잘생긴 얼굴에서 풍겨오는 자애로움과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인자한 모습을 계속 바라본다. 함께 간 사람들과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흉내 내어 보았다. 각각 사진으로 찍어서 보니 내 모습이 가장 어색하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일행 쿵짝쿵짝 네박자중 가장 사유가 안 되는 사람이다. 우리 네 사람은 모두 목포와 연관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서로 통하는 것이 많다. 평소엔 각자 생활에서 열심히 살다가, 시간과 마음이 맞을 때 함께 여행을 가거나 전시관 관람도 한다. 모두 목포에서 자란 탓인지, 모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잠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된다. 힘든 시간들을 견디고 또 다음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큰맘 먹고 서울까지 갔으니, 반가사유상만 보고 그냥 내려올 수는 없었다. 이태원 러시아 식당 트로이카에서 보드카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조금 들뜬 기분으로 길상사로 향한다. 길상사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곧 진정되었다. 길상사에서는 법정 스님도 살아계신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1년 전에 혼자 길상사에 온 적이 있다. 그때 기분과는 사뭇 달랐지만, 신기하게도 그때 못 본 반가사유상을 뜰에서 보았다. 반가사유상을 접하고 난 후 책에서도 더 눈에 잘 띈다. 반가사유상을 보고 와서인지 어디에서 보든 더욱 반갑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유란 무엇인가책에서 읽은 가장 심오한 것을 사유하는 자는 가장 생동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글귀도 더 깊이 사유해 본다.

며칠 전, 한통의 문자를 받고 며칠 앓고 있다. 보낸 사람도 쉽지는 않았겠지만, 서운하고, 실망하고, 아팠다. 마음은 수없이 괜찮다 괜찮다 말하지만, 악몽을 꾼다. 보고 싶지 않은 아니 보고 싶은 사람들이 꿈에 나와서 등을 보인다. 예민하게 굴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몸은 이미 반응을 한다. 붓다의 자애심 명상에서 모든 존재를 위해 명상을 하다 보면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그때서야 잠을 편안하게 자고, 악몽을 꾸지 않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서도 사랑받고, 신들이 보호하고, 얼굴빛이 밝고, 혼란 없이 죽고, 출세간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범천에 태어난다고 한다. 문득 내게 오신 모든 인연과 환란 또한 피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나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명상할 수 있는 아량이 좀 더 생기면 좋겠다. 새벽, 반가사유상을 떠올릴 수 있어 감사하다. 이 또한 잘 지나가리라.

2022. 3. 14. 아침.

김경애 약력

2011문학과의식등단. 시집 가족사진, 목포역 블루스있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목포문학관, 목포공공도서관 외 상주작가 역임. kakim0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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