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게으름에 대하여
상태바
[김희영의 희망편지] 게으름에 대하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3.25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포시민신문] 좋아하는 일을 하면 지치지 않을 것이란 속단에 깜빡 속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없이 신중해졌고, 아마추어보다는 프로의 모습을 꿈꾸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자질의 문제에 대해 수없이 되묻곤 했다. 마냥 좋아한다고 이 일을 잘할 수 있겠어? 나는 그 물음에 아직도 명확한 정답을 내놓지 못했다.

요 며칠 바짝 공모전을 준비했었다.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낮은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방책 중 하나였다. 스스로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것 자체도 자존감을 부스러뜨리는 일 중 하나였다. 성취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수상에 대한 기대는 나의 실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어설프게 글을 써서 어느 공모전에 투고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수상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수상작이 공개되는 날, 만일 내가 떨어지게 되더라도 나 자신을 깎아내리지는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다. 기대하지 않을 것, 요란법석 떠들지 않을 것, 침착하게 기다릴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하지 않더라도, 마음 한쪽에서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시커먼 연기는 금방이라도 내 마음의 집체를 뜨겁게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초동 작업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해보기로 했다. 불안감을 잊을만한 아주 달짝지근한 유혹. 이른바 일탈, 딴짓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의 나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필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에 서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집에서 출판 일을 하기도 했다. 공모전을 시작하기 전에는 꾸준히 했던 작업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상적인 계획들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오후 2시까지 늑장을 부리며 이불속에 파묻혀보기도 했고, 남들이 한다는 게임도 하루 종일 해보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과자를 까먹기도 했다. 평소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게으름의 끝판왕이 된 것이었다.

한 때 내가 딴짓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그 생활에 물들어 다시는 성실하게 살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늘 일정이 적힌 다이어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니 약속도 늘 끊이지 않았고, 하루에 해야 하는 계획들도 수두룩 빽빽이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었다.

그러나 그 알량한 딴짓도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었다. 일 년에 몇 번이나 방탕하게 살아보려나. 아마 손에 꼽을 것이다. 내 판단에서는, 방탕한(?) 생활에 물들게 되면 다시는 열심히 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게으름이란 즐거움에 맛이 들려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살다가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이 아닌, 꿈의 테두리 밖으로 도태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남들이 나에 대해 실망한 눈초리를 쏘아보는 것보다,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그렇게 쫓기듯 계획을 이행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었다. 최근의 딴짓은 나에게는 큰 일탈이었지만, 이 일탈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대형 공모전에 장편소설을 투고하고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글에 대한 회의를 느껴 펜을 놓고 친구들과 매일같이 놀기만 했다. 누구나 그렇듯 평범하게 야자시간에 공부도 해보고(당시 나는 야자시간에 선생님 몰래 글을 썼다), 기숙사에 들어가서는 제시간에 잠에 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일탈은 결국 일주일 만에 다시 원고지 앞에 나를 앉혀 놓았다.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과 불안감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펜을 다시 잡을 것이고, 일을 열심히 할 테고,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날 것이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 본 적이 있듯이, 갔던 길을 따라 또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거짓말처럼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탈을 감행한 지 불과 일주일도 채 안되었을 때였다. 신나게 해대던 게임도 지루해졌고, 영상은 더 이상 볼만한 게 없었으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도 허리가 쑤셔 도무지 오래 할 수 없었다. 불안감을 두려움으로 타파하게 된 것이었다.

공모전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마음 밑바닥에서 잔잔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발바닥으로 참방 거리며 다닐 만큼, 그렇게 높은 기대도 아니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내년에 또 도전하면 되지.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지금 하는 일들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상만 보고 있기에는 이 시간이 무척 아까웠으니까.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몇몇 친구들은 종종 비슷한 고민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나 하루 종일 자기만 했어, 난 한 달을 내내 놀러만 다녔어, 난 일 년 동안 한 게 없어. 처음엔 나도 그들에게 열심히 살아보라는, 마음에도 와닿지 않을 조언 따윌 건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의 그런 나름의 일탈(?)도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한 휴식이 필요할 만큼 바삐 살아왔던 것이라고. 아니면 어떤 방향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지 찾지 못한 것이라고. 아직 인생에 터닝포인트 같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은 것이라고. 게으름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달콤한 게으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살아왔었다면,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다시 열심히 살고 싶어 할 것이었다.

그러니, 게으름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딴짓은 아주 간약한 것이어서, 한 계절의 환절기처럼 짧게 왔다가 금세 날아가버릴 테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