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반추해보는 제왕학과 마키아벨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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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반추해보는 제왕학과 마키아벨리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3.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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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요즘 사극 태종 이방원을 자주 시청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다 보니 대체로 정통사극을 즐겨보는 편이다. 실로 오랜만에 텔레비전 스크린에 등장한 대하역사드라마가 반가운 이유이다. 사실 그 반가움 이면에는 드라마작가 의도와는 관계없이 내가 은근히 기대하는 바가 있다. 봉건군주들은 태생이 원자이고 세자였다. 본인의 리더로서의 자질과는 상관없이 군주로 결정되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한 나라의 리더로 묘사되는지 관심이 많았다. 이 드라마가 역사강의가 아닌 한 속성상 오락적 요소가 충만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배움에 목말라 주말 늦은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쭈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인과 길모어가 체험경제이론에서 주장하는 교육적 요소와 오락적 요소가 적절히 결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드라마가 체험경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은!).

조선조를 관통한 최고의 성군이자 학자이신 정조는 왕실교육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 즉 실천의 미학을 구현한 군주였다. 그는 왕조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훌륭한 군주이셨지만 개인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고독과 싸워야 했다. 아버지가 부재한 교육은 할아버지 영조를 통해 실현된다. 또 다른 조선조 성군 세종도 부친 태종으로부터 엄한 교육을 피할 수 없었다. 두 분의 성군을 포함한 군주교육은 소위 제왕학이다. 강사진은 제상급을 비롯한 당대의 스타급 학자들로 꾸려진다. 일반인들이 받는 교육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프랑스 대표 지성 삐에르 브르디외는 이를 구별짓기라고 하였다. 이는 계급의 정체성을 구분짓는 아비투스이다. 군주가 제대로 교육울 받았다는 것은 백성 입장에서 그리고 한 왕조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큰 복이었다.

필자의 원주이씨 중시조 이반계옹은 태종의 스승이셨다. 새 왕조의 개국에 반대하여 두문 72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태종은 그의 충절을 기리고자 사후 영의정으로 추존하였다. 또 다른 선조이신 이의경옹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스승이셨는데 세자를 둘러싼 시대에 분노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두 성군에게는 이처럼 지조있는 충신 스승들이 계셨다. 세자의 교육은 조기교육을 담당한 보양청을 비롯하여 세자시강원에서 담당하였다. 소학과 사서삼경을 기본으로 예절과 효 등 이른바 인성교육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두 분에게 제왕학의 핵심역할은 아버지 태종과 할아버지 영조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타고난 자질이 부족하였는지 아버지 태종의 엄격한 교육에 대한 반감이었는지 양녕은 끝내 용상에 오르지 못하였다. 세종의 치세는 타고난 자질, 제왕학을 충실히 학업한 본인의 노력에 태종의 악역이 합작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조 또한 세손 정조를 군주로 만드는데 공을 들였다. 영조는 아들을 보낸 아픔을 금등지사에 숨기고 세손과 왕조의 미래만을 생각했다. 세손 정조는 15년 세손기간은 물론이고 제위기간 내내 오로지 애민만을 생각하며 끝내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뜸금없이 왕이 된 철종도 있지만 제왕학을 이 두 분만 받은 건 아닐진데 두 분은 성군이 되셨고 또 어떤 분들은 폭군이 되었다. 역시 정치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태어난다. 조선이 세종의 치세를 지나 나라의 기반을 잡고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이다. 피렌체 시민들은 지배자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웠는데 이후 교황청의 도움으로 메디치 가문이 복귀한다. 정치권력의 교체기라는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가 안정된 정치질서를 창출하는데 관심을 갖은 건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주장했다고 이해된다. 강한 정치권력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이것은 부패청산 능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두 가지 점이 보인다. 정치권력의 장악과 유지라는 개인적 리더십과 부패청산을 통한 부강한 국가건설을 이루는 통합 리더십이다. 우리 대선을 전후하여 주장하는 시대구호가 당시를 연상케 하는 데자뷰처럼 여겨진다. 정치에서 추구하는 시대정신이 600년 전 그 시절과 흡사하다니 흥미롭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새롭게 선택받았다. 국민들은 지지 여부를 떠나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제왕학을 학습한 조선 성군들과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음미해볼 것을 권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의식을 부패라고 보았다. 여러 견제장치가 붙어 신하의 나라로 설계된 조선에서도 태종과 같은 군주는 지배자 시각에서 부패한 신하를 단죄하였다. 마키아벨리는 무릇 지도자라면 비르투를 소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르투란 역경이나 재난을 맞아 이것을 잘 다루는 인간의 의지와 역량이며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할 수 있는 힘이라 했다. 그는 좋은 참모의 조언을 받아 들이고 인재등용을 개방적 원리에 따라 하라. 권력을 공유하라, 대중과 권력자가 결합되도록 솔선수범하라고 일렀다. 모든 정치체제의 불안은 정치권력의 독점욕에서 출발한다고 설파한다. 조선 성군들은 늘 애민을 가슴에 품고 사셨다. 살펴보니,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도자상이 법의 통치, 권력의 분산, 지도자와 국민의 일체감이라는 통합의 리더십이라고 역사는 이미 말해주었다. 다만 우리가, 아니 어쩌면 지도자를 참칭하는 사람들만 이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모든 정책이슈를 집어 삼켜버린 새정부의 청와대 입주여부 논란을 보면서 벌써 자신의 손가락을 만져보는 사람들도, 조선 말 고종이 일본의 압력에 쫓겨 러시아공관으로 아관파천을 했던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본말이 전도됐다고 나만 느끼는 걸까? 국민과의 일체감 없는 정책의 공허함을 지켜보며 비판했던 신집권세력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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