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잠에 취해서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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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잠에 취해서 하는 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4.0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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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꽤 오래 전에 발매된 브릿팝을 틀어놓고, 책상 위에 스탠드 불빛에 의존한 채 글을 써내려 가. 눈을 감고 나른해진 마음으로, 손끝은 타자기에 올려둔 채로 말이야. 삶의 불편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다만, 흘러가듯, 스쳐가듯 지나치는 방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야.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힘 빠진 두 눈에 눈꺼풀의 무게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아. 나른하고 편안한 기분에 첨가된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는 몇 시간 전에 털어 넣은 카페인일 뿐이야. 이건 조금 이상한 기분이야.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같은 두근거림과는 전혀 다른 행보야. 아랫배가 조금 뻐근해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야. 저녁에 조금 매운 깐풍기를 먹었더니, 그래.

정신 상태도, 심장도, 몸도 제각기 따로 노는 새벽에는 오히려 그럴싸한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것 같아. 잘됐어. 이런 글을 쓸 일도 별로 없는데. 금세 잊히기 전에 써둬야겠어. 지금 이런 기분, 아주 적절한 짜증과 행복감이 섞인, 이 오묘한 기분을 말이야.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내 몸을 혹사시킬 만큼 무리해서 한 적이 있었어. 그건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아닌데, 가끔은 내가 왜 그렇게까지 살고 있나 싶어. 그냥 자도 되는데, 쉬어도 되는데 꾸역꾸역 글을 써. 웬만하면 하루에 글 한 편씩은 꼭 쓰자던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야. 마치 이 약속이 꺾이면 세상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래도 괜찮아. 이 글을 쓴 걸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늘은 한의원에 다녀왔어. 한의사 선생님이 내 뒷덜미를 잡아보시더니 생각보다 꽤 심각하다고 말씀해주셨어. 다음에 또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교정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이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건, 누구나 다 이런 고질병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목디스크쯤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오른팔이 저리는 것쯤이야, 고개를 아무리 젖혀도 풀리지 않는 뒷목 근육쯤이야 누구나 다 겪는 고통이라고 말이야. 그런 것에 유난 떨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이젠 정말, 아파서 견딜 수가 없겠더라고.

한의원에서 각종 치료를 받고 나와서는 모임을 나갔어. 커피를 마시고 나니까 온 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어. 치료받은 어깨는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카페인에 매료된 정신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지. 그땐 몰랐어. 이 새벽에, 이런 사달이 일어날 줄은.

찬바람을 쐬었고, 병원에도 다녀왔으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어. 씻고 나면, 알지? 그 노곤함 있잖아. 십 년의 묵은 피로가 한 번에 가시는 것 같은, 몽롱해져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기분. 그런데 카페인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기분. 그 짜증 나는 행복 말이야. 지금 그런 상태야.

학교 다닐 때는 이런 기분을 유지하려고 무던 애를 썼어. 고등학교 시절, 중지가 물러 터지도록 장편소설을 썼을 때나, 대학교 시절 날을 새서 영상편집을 할 때처럼 말이야. 날을 샌다고 좋은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런 삶이 마치 청춘과 젊음의 표상인 것처럼 굴었어. 젊을 때 날 새는 것쯤은 기본으로 겪어봐야 한다고 말이야. 그게 참 고치기 어려운 습관을 들여놓았어. 밤이나 새벽에 일을 해야만 하는 병에 걸린 것 같아. 후천적인 올빼미족, 밤까지 일을 미루게 되는 그럴싸한 변명거리.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억지로 목을 뒤로 넣어보고 있어. 정말 오랜만에 찾은 가벼운 어깨인데, 다시 단단하게 굳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기분 좋은데, 짜증 난다.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 그래도 이 글을 마치고 이부자리에 누우면 금세 곯아떨어질 수 있겠지? 그러면 좋겠다. 오늘은 잠들기 전에 따뜻한 우유 한 잔 해야겠어.

지금 이 시간에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많은 이가 있겠지. 밤에 늦게 자고, 잠도 짧아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더라고. 그런데 있지. 나는 다 좋은데, 가끔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조금씩 비축해두며 오늘을 보내면 좋겠어. 날을 새는 건 당시에는 스스로 되게 멋져 보이는데, 다음날 되면 다크서클이 온 얼굴을 뒤덮은 폐인이 되어 있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줄 알아야 진짜 내 인생을 잘 보내는 것 같아. 밤에 일하는 건 좋은데,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지 말았으면 좋겠어. 정말 깨어있어야 할 건, 눈이 아니라 정신이니까.

이 엉망진창인 글을 쓰고 나니, 조금씩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아. 이제 카페인 약발도 떨어져 가나 봐. 잘됐다. 이제 푹 잘 수 있겠어.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한 마음으로 글도 쓰고, 일도 할 수 있을 거야. 느낌이 그래. 왠지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아. 이 글을 읽는 너도, 내일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런 짜증 속에도 행복이 있듯 말이야.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았다. 우리, 내일도 잘 한 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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