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상태바
[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4.21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양경인 지음, 은행나무, 2022-04-01

[목포시민신문] 생의 애착이 그런 것인가. 9일간 쫄쫄 굶으며 혼자 한라산을 헤매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이 책은 해방 이후 활동한 사회주의 여성 운동가 김진언 할머니와의 구술 증언을 통해 출간되었다. 역사적 사건의 속사정을 헤아려보면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과 어린아이인 경우가 허다하다. 전쟁이든 민란이든 학살이든 약자로서의 이중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의 경계를 넘어 희생과 용기로 비극적 역사 속 뜨거운 불길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늘 존재한다. 그들은 억압의 시대에 가부장적인 봉건제도 아래 이중 억압을 겪으며 어떻게 자기 해방의 길을 찾아 나갔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저자가 1987년부터 5년 간 김진언 할머니의 증언을 채록하여 출간한 이 책은 제주 4.3 평화상 논픽션 수상작을 수상했다.

제주 4.3 여성운동가들 중 살아남아 그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살아계신 분들도 제주에 거주할 경우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 소개하는 김진언 할머니는 1949년 제주에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북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북한에서 활동을 이어 나가다 남파되었고, 다시 체포되어 25년이나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 후 10년이 넘는 보호 감시가 잦아들고도 몇 년이 지난 뒤여서 그나마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증언을 녹음할 때 할머니는 내가 죽으면 발표하라는 부탁을 남겼다. 여기 등장하는 증언자들이 모두 고인이 된 지금, 그 이야기를 펴낸다.”

저자 양경인은 김진언 할머니와 5년여를 만나면서 탁월한 능력과 품성을 가진 한 여성이 역사의 투망에 갇혀 고적한 말년을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저자는 20대 시절부터 30여 년간 4.3 현장을 취재하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그 시대 제주 사람들의 소망과 열정, 그리고 좌절의 깊은 상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집밥을 셀 수 없이 먹으며 들었던 한 여성운동가의 꿈과 좌절을 통해 그분들이 꿈꾸던 좋은 세상이란 그저 사람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김진언 할머니 뿐만 아니라 해방 당시를 살아내며 씨줄 날줄로 관계가 이어져 있던 약 15명의 인터뷰 및 증언이 함께 구성되어 있다. 미군정기의 제주도 민간인 학살이 한 집안을, 한 마을을, 섬 전체를 송두리째 멸족시키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는 피해의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폭도로 몰린 제주도 사람들이 어떻게 항거하고 진정한 독립과 해방과 통일을 위해 가열차게 싸웠는지 보게 된다. 특히 남성 주도적인 지도 체제 아래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해방을 스스로 도모하며 참여했던 사회 운동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부분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아닐까 한다.

-동네산책 책방지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