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우리의 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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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우리의 꿈에 대해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4.22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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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꿈에 대해

[목포시민신문] 감정의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날들이 지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몰라 가슴앓이하던 시간들. 일상의 반복 속에 살아가는 삶이란, 마치 해일에 집어삼켜지는 느낌이었다. 해일에 떠밀려 아주 깊은 심해까지 긴 시간 동안 잠수하고 있었다. 내 코끝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공기방울을 바라보면서, , 나 이제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했다. 뭘 해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것 같았다. 처절했던 몸짓은 점점 의미 없이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몸도 마음도 죽어갈 때 즈음, 나는 잊고 있던 한 친구의 이름을 떠올랐다. 언젠가 이런 나의 우울에 희망을 던져주던 사람. 우울의 바다에 잠겨 죽기 직전인 나의 영혼을 끌어올려 줄 사람, 유일한 나의 단짝의 이름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뜨거운 커피잔에 손을 대었다 뗐다 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테라스 유리창에서 부서졌다.

잘 지냈어?

친구의 가벼운 안부에 나는 웃으며 인사했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친구의 얼굴은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정겨움이 어려있었다.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꿈은 사라져 있었다. 꿈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소박했다. 등 떠밀리듯 시작한 사업은, 오히려 온 정신을 혹사시켰다. 흘러내리기 시작한 매출을 바라보며, 굳건했던 마음의 댐에 망치질을 시작했다.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포수처럼 물길을 쏟아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우울이 강물로 넘쳐 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일만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더 공허해져 갔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떤 날은 화장실 변기에 코를 박고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일에 내 몸을 혹사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다른 걸 배우고, 공부하고, 실패하고, 깨닫고를 반복해봤자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열심히 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 것. 내 정신은 온통 광기 어린 집착으로 매몰되었다.

이걸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무서워. 이러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될까 봐.

내 말을 듣던 친구가 한참 뒤에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네가 널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

고개를 든 친구가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왜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구박하는 거야. 난 네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걸.

그러면서 친구는 내 어깨를 끌어안아 주었다. 그 따스한 온기에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는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이 걱정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는지를.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렀다. 잇새로 울음이 슬금슬금 새어 나오더니, 나는 이내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턱밑까지 차올라있던 내 우울의 바다가 차츰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2. 너의 꿈에 대해

친구는 멋진 서예가가 되고 싶어 했다. 새하얀 붓에 먹을 묻혀 멋스럽게 휘갈기는 모습이란, 누구든 반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다. 집에서 한 시간이나 가야 하는 거리를 지하철로 왔다 갔다 하며, 꼭두새벽부터 해가 질 시간까지 서실에 붙어 있었다. 나는 있지, 나중에 내 전시회도 열고, 작품도 팔고 그럴 거야. 친구의 두 눈은 희망과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런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어여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친구는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삶에 충실했다. 사랑이라는 황홀한 바다는 순식간에 시간을 집어삼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사랑이란 이름의 바다는 꿈을 향해 돌진하던 친구의 시야를 가렸다.

서른에 다다르고 나자, 친구는 빼앗겼던 시간에 대해 회상했다. 왜 그동안 나는 열심히 살지 못했는지, 늘 게으르기만 했는지 자책했다. 또 한때는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을 위로했다가 더 깊은 우울감에 휩싸였다. 충분히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다며, 끝없는 반성의 바다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난 분명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돌아보니 열심히 살지 못했어.

친구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그 어두운 우울은, 그 친구의 마음에 쌓인 사랑의 바다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멋진 서예가가 되고 싶었고, 너랑 전시회도 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글씨를 가르쳐주고도 싶었어. 친구의 서글픈 고백이 내 가슴에도 잔잔히 스며들었다.

넌 충분히 열심히 살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너 자신을 위해서. 어떤 것 하나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잖아.

나는 친구의 손등을 포개 따뜻하게 만져주었다. 눈시울을 붉히던 친구가 천천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눈물이 차올라있었다.

네가 이루지 못했던 서예가, 다시 해보자. 우리 모두 꿈을 잃지 않도록 잡아주자. 내 출판사에서 너 책도 내고, 서예 전시회도 열고. 우리가 우리의 꿈을 만들어내면, 분명 더 찬란하고 멋진 꿈이 될 거야.

나는 미소 지으며 친구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그러자 친구가 눈물을 훔쳐내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

친구의 말에 나도 웃으며 답했다.

내가 더 고마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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