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친절한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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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친절한 궤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4.2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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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남들이 나를 보면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그 말이 나에게는 꽤 불편했는데, 정작 나 자신은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삶이었다. 나는 늘 요령 없이 열심히만 살아왔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누나로, 누군가의 사람으로 살아왔던 나는, 단지 그 삶 속에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타인의 기대와 열망 속에 내 삶은 피어났다. 그리고 자그맣게 ""이라는 것을 꿨다.

한우물만 파도 이룰 수 있을까 말까 한 꿈을 꾸면서, 단 한 번도 타인을 탓한 적 없었다. 누군가의 딸이라는 이유가, 누군가의 누나라는 이유가, 누군가의 사람이라는 이유가 내 인생을 발목 잡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다만 내가 열심히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내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힘겨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내가 선택한 삶이었으니까. 타인이 내게 이런 선택을 하라고 종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타인의 눈치를 보며 지레 겁먹고,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라고 생각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어쩌면 내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어쩌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그토록 오열했던 적이 없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 몇 번 훌쩍인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원망 섞인 비명을 내질렀던 적은. 그것은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에게, 어쩌면 내게 이토록 가혹하실 수 있냐는 울음 섞인 외침이었다. 한 번도 내 인생이 억울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그날 밤 처음.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원망했다. 딸로서, 누나로서, 사람으로서 살게 한 누군가들을.

그러나 누군가들을 이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간 눈치 보며 살아온 사회의 틀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축적해 온 사회의 시선들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시선들에 수긍해 온 나 자신을 탓할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이제 날 탓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에서의 옳은 선택이란 없었다.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고, 저렇게 살아야 좋다는 말들을 들으면 마치 내가 잘못 생각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컨대 첫째라면 반드시 희생해야 하고, 누나라면 버팀목이 되어야 하고, 여자라면 꼭 결혼을 해야 하고, 꼭 자식을 낳아야 하고, 반드시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들. 난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단지 누군가의 삶의 일부라는 이유가 날 괴롭게 따라다녔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던 요즘은 더욱더 그런 생각 속에 날 고립시켰다. 다들 이렇게만 살면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꾸리기 위해 내가 꿈꾸던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나의 삶 전부를 내려놓게 될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가족이었든, 결혼이었든, 내 인생이었든. 내가 모든 걸 포기하는 날에, 그때 내 모습은 어떨까. 더 이상 나 자신을 원망할 수조차 없을 때, 그때 나는 어떻게 될까. 하루하루 초조함 속에 내 영혼을 밀어 넣으면서도, 주변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살아야 행복할 거라는, 친절한 궤변들을.

어쩌면 미쳤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거꾸로 가고 싶어 하니까.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한 것인지를. 수많은 고민 끝에 타협점을 찾을 테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게 꼭 내 인생일 필요도 없다. 단 한 번도 이기적으로 살아본 적 없는 내가, 이제는 행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또 노력할 테다.

인생에 모범답안은 없다. 내가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게 내 삶에서는 정답이 아닐까. 더 이상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내 의사가 그렇다면, 지금은 그게 옳은 거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 거라면, 지금의 내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나 자신을. 닥쳐올 미래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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