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香, 이 세상 아름다움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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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香, 이 세상 아름다움의 극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4.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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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를 만드는 계절이 눈앞에 돌아왔다. 해마다 4월말이면 남녘 차농가에서는 찻잎을 딴다. 흔히들 ‘우전차’라고 하여 곡우(4월20일) 이전의 차를 좋은 차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열대인 중국 기후 기준이고 한국의 찻잎은 입하(5월 5일) 전후가 좋은 것이라고 초의스님께서 <동다송>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한국에서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야생다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곡성군 오곡면 침곡리의 산절로야생다원에서 해마다 남도야생차지기 회원들과 함께 전통 야생차를 덖는다. 우리 전통차 복원운동의 일환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때가 되면 생찻잎이 내뿜어줄 환상적인 향을 그리며 코끝이 발름거리기 일쑤이다. 한 열흘만 참으면 섬진강변 야생차밭 차향의 몽환에 묻힐 것을 기대하면 내가 그동안 야생차밭과 차덖는 일에서 체감한 차의 미덕을 여기에 늘어놓는다.

나는 차의 가장 큰 미덕이자 아름다움은 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茶香이 아름다운 것은 春意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춘의'를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易 계사전에 ‘천지지대덕왈생(天地之大德曰生)’이라고 하여 천지(자연)의 큰 덕성은 ‘(만물을)살게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유학에서는 앞에서 말했듯이 천지만물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性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性이라는 글자는 ‘心+生’, 즉 ‘살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이어서 ‘천지지대덕왈생’과 부합한다. 이 자연의 큰 덕성인 生을 ‘춘의’라고 한다. 봄이 되면 겨우내 꽁꽁 얼어붙어 모든 것이 죽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동토에서도 싹이 트고, 누가 시키거나 거액을 투자한 일도 아닌데 모든 산야에서, 하찮은 미물에서 산새 들짐승 사람에 이르기까지, 춘정에 못 이겨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가. 이것이 자연 만물에 깃들어 있는 仁과 春意의 발동이다.

초의선사가 즐겨 썻다고 하고, 이후 다실 현액이나 그림의 제목으로 많이 쓰이는 水流花開라는 말이 있다. 추사를 비롯한 다인들이 즐겨쓰는 싯구(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에도 ‘茶香’과 함께 ‘水流花開’라는 ‘춘의’의 문구가 들어있다. 위 싯구에서 ‘묘용시’의 뜻을 헤아리는 데는 <중용>에 나오는 관련 문구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喜怒哀樂之 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天下之大本, 和也者天下之達道.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 희로애락이 맘속에 잠재해 나타나기 이전을 中 이라고 하고,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和라 한다. 中은 천하 만사 만물의 큰 근본이고 和는 천하의 모든 일에 통달하는 길이다. 중화가 극진하면 천지가 제 자리를 찾고 만물이 자라난다.

이를 바탕으로 위 시를 풀어보면 “깊은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곳(靜坐處)에 반 쯤 차를 따라놓은 찻잔에 차향이 피어오르고(茶半香初)(차는 잔을 가득 채우지 않고 반 잔 정도만 따라야 그 위 나머지 반 잔 부분에 향이 고인다.), 이런 차와 차향이 발휘하는 자연의 理에 대한 암시와 더불어, 未發의 中이 和로 已發하여 모두 절도에 맞아 致中和가 되어(妙用時), 천지가 제 자리를 얻고 만물이 자라는 春意(水流花開)가 느껴진다” 정도가 되겠다.

이밖에도 소인묵객들은 차와 관련하여 대부분 차의 향을 노래했다. 위의 다반향초도 그렇거니와 추사가 초의에게 써준 글씨로서 추사의 작품 가운데 걸작으로 평가받는 ‘一爐香室’이란 것도 茶香으로써 茶를 상징하고 있다.

茶香이 주는 春意는 무엇인가? 이른 봄 가장 일찍 피는 꽃 매화의 향(梅香)도 향의 순서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그러나 굳이 매향과 차향의 차이를 찾는다면 매향은 차향에 비해 좀 느끼한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이고 피어나(雪中梅) 깡깡 얼은 동토(凍土)의 육신을 풀어주고 맛사지 해주기에는 좀 걸죽하고 약간은 자극적인 맛이 있는 게 좋다. 이에 비해 茶香은, 봄이 겨울의 문지방을 넘어들 즈음 대지가 어느 정도 따스한 기운을 안으로 체득하여 그것을 에너지로 하여 본격적으로 춘의를 세상에 드러낼 즈음에 그 ‘춘의’를 담고 나오는 것이어서 매향과는 역할이 다르다. 이런 것이 자연이 차향을 환상적이면서도 깊고 온화돈후 불편불의(不偏不倚 : 편벽되거나 한 쪽에 기울어지지 않음) 무과불급(無過不急: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음)한 中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보낸 섭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차향이 이럴진대, 차향의 진수는 생찻잎이 알려준다. 다도를 말하는 대부분의 차인들은 製茶 경험을 갖지 못하여 생찻잎의 향을 맡아볼 기회가 없어서 생찻잎의 환상적인 향이 차향의 진수인 줄을 모르고 완제된 차의 불완전한 향 또는 생찻잎의 향과는 전혀 다른 ‘냄새’를 차향으로 오인하고 있다. 또 製茶人들은 차를 논할 筆舌의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박제화된 관행적 제다에 몰입돼 생찻잎의 향에 들어있는 자연의 현묘한 손짓을 눈여겨보지 못한다.

한국 전통 야생차에는 중국 차나 일본 차에는 없는 특유의 향이 들어있다. 중국 차는 향이 좋은 대만 고산차나 복건성 반발효 계열 무이차의 경우 향이 지나치게 강하여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기름기 많고 냄새가 짙은 중국 음식물의 식후 후취後臭를 없애주기엔 좋지만 ‘향을 음미 또는 완미’하기엔 기세가 강하다. 야생차인 古茶樹 잎으로 만든 보이차는 원료인 생찻잎이 향은 더할 나위없이 좋으나, 보이차라는 게 원래 ‘향’을 고려하여 정갈하게 만든 게 아니고 오래두고 먹을 많은 양을 생산한다는 목적과 곰팡이 발효하는 제다방법 상 생 찻잎의 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보이차에서 나는 냄새는 ‘썩은 새’ 냄새와 흡사하다. 일본 녹차(잎차)나 말차는 생선회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상 비린내와 상극인 풋(풀)냄새를 띠도록 만들어진 탓인지 워낙 조작적인 ‘그린’의 냄새가 강하다. 이는 증제차 특유의 향이기도 하다. 또 일본 호우지차의 경우는 강하게 태워서 누룽지 냄새가 강하다. 둘 다 생 찻잎의 환상적인 향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한 생 찻잎의 향을 잘 전달해주는 차향의 진수는 야생찻잎으로 만든 한국의 덖음차(녹차)에 잘 담겨있다. 단 되도록 순수한 야생찻잎으로써 제다를 제대로 했을수록 좋은 향이 확보된다. 야생찻잎을 강조하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 차 산지의 아열대기후와 다른 혹한을 이겨낸 한국의 찻잎에 센 기운이 향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료에 의존하는 재배차는 자연의 기운이 부족하여 겨울엔 가지가 빨갛게 말라죽고 봄에 난 잎 역시 기운이 약해 향을 제대로 지니지 못한다.

초의선사가 엮은 <다신전>에서 茶香에 대해 “차에는 眞香, 蘭香, 淸香, 純香이 있다. 안팎이 똑같은 것은 순향, 불김이 고루 든 것을 난향, 설지도 너무 데쳐지지도 않은 것은 청향, 곡우전 충분하게 다신이 갖추어진 것을 진향이라고 하며, 含香, 漏香, 間香 드은 모두 좋지 못한 향이다.”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서 ‘난향’과 진향이 차의 향을 가장 본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본다. 난향은 ‘불김이 고루 든’ 향인 동시에 ‘난초의 향’을 말하는 것으로서 향의 구체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한다.

또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즉위(661년)하면서 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 행한 축문에 “...가야국의 수로왕이 허황후를 맞이하였을 때 황후를 따라온 부부에게 蘭液(좋은 음료)과 蕙?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동주는 “여기서 말하는 ‘향기 나는 좋은 음료’ 난액이 다름 아닌 오늘날의 차이다.”(<다관에 담긴 한중일의 차 문화사>, 정동주 지음, 한길사, 2008, 265쪽)라고 말한다.

한국 덖음차 제다에 있어서 어떤 이들은 ‘구수한 맛’을 강조하며 마무리 과정에서 일부러 찻잎을 지나치게 볶거나 센 불에 눌려서 숭늉 맛과 향이 나게 한다. 그런 차는 약간 황갈색을 띤다. 이는 예전의 ‘못먹던 시절의 차’ 또는 ‘절간의 차’를 연상케 한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엔 숭늉도 배부르도록 먹기에 좋은 음식 역할을 했고, 절집에서는 저녁밥을 먹지 않는 규율이 있어서 약식(일종의 다과)과 함께 마시는 차가 간식 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 덖음차에서 ‘구수한 맛’이 나도록 제다하는 일은 차의 본질을 망각하고 저지르는 짓이다. 차의 본질은 향이고, 차향의 참모습은 생찻잎이 품고있는 환상적인 향을 원형에 가깝게 담아내는 덖음 녹차에 있음을 안다면 차를 누룽지처럼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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