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제주, 같은 길도 신비롭게 우리는 세 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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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제주, 같은 길도 신비롭게 우리는 세 번 걸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4.2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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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잠시 일상을 접고 제주 퀸메리호에 몸을 싣는다. 캘리그라피그룹자몽(自夢:자유를 꿈꾸다) 소품전(마음, 소소하게 품위 있게 전해요)도 끝났다. 각각 몸담은 현장에서 중요한 일은 미리 끝내고 홀가분하게 떠나기로 한다. 직업은 다르지만, 취미가 같은 사람들 안에서 글쓰기에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시시락락이 탄생하였다. 시로 놀고, 술과 놀고, 멋글씨와 놀고, 일상을 여행하듯이 즐겁게 논다는 의미다. 앞으로 우리들의 기반이 탄탄해지면 더 많은 회원도 들일 예정이다.

어제까지 흐렸던 날이 아침에는 화창하다. 목포항을 떠날 때 목포를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물론 돌아올 때 바라보는 목포의 풍경은 말해 무엇하리오. 우리들은 마치 배를 처음 타는 사람처럼 멀어지는 목포항을 향해 손을 흔들고 탄성을 지른다. 그러니까 작은 일에 감탄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여행은 차도 안 가져가고 복잡한 것들은 다 잊고 편안하게 쉬고 오기로 한다. 객실에 짐을 풀어놓고, 식당에 앉아 음식을 시키고, 가져온 술을 아침부터 풀어놓고,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벌써, 제주항이다. 차가 없으니 동문 시장까지 걷는다. 노트북까지 챙긴 나는 등에 돌덩이를 지고 가는 것처럼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가 또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려니 하며 기꺼이 수고를 감내한다. 글을 쓴다기보다 일행들에게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겠다고 준비한 것이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겠다고 하니 모두 깔깔깔 웃었다. 그런데 여행 중에 노트북을 이어주는 선을 어디다 놓고 왔는지 기억이 없고, 뮤직비디오는 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다른 노트북으로 몹시 어렵게 쓰고 있다.

여행을 가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유명한 곳을 찾아 다니곤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함덕 해수욕장 가까운 곳에 숙소만 정해놓고 딱히 계획이 없다. 그래서 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 동문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마음 내키는 식당에 들어가 모둠회와 딱새우를 시켰다. 사진을 보니 식당에서 맛있는 것 먹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함덕으로 갈 때 버스를 탔다. 나는 버스를 타고 난 후 내릴 때 눈을 떴다. 창밖 풍경은 하나도 못 봤다. 사람들이 우리가 말할 때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버스에서 내려 해변을 걷는다. 해변에는 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파도가 거세지 않으면서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가 아름답다. 카메라에 잡히는 피사체가 모두 그림이다. 무엇보다 좋은 느낌은 우리 마음이 쫓기지 않으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한가롭게 느껴진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20여분을 걸어 해변으로 갔다. 밤에는 해변에서 쇼핑도 하고 버스킹 구경도 하면서 춤을 추었다. 함덕 그때 그 집이름이 맘에 들어 들어갔다. 우리의 선택은 훌륭했다. 마감 시간이 다 되도록 이야기는 끝이 없고, 숙소로 들어와 다시 이야기꽃이 피었다.

새벽형 사람들은 아침에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한다. 두 사람은 숙소에 있고, 두 사람은 또다시 아침 길을 걷는다. 마을 돌담길, 작은 풀꽃, 동네 강아지, 보리밭, 남의 집 화단, 지붕을 유심히 보았다. 어젯밤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카페 델문도에 가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숙소에 들어와 일행들과 다시 또 그 마을 골목길을 걷는다. 어느새 동네 주민이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제 모자와 손뜨개 가방을 샀던 곳에 짐을 맡겨두고 해변을 걷다가 사계라는 카페에 들렀다. 그곳에서 우리는 종이와 펜을 꺼내놓고 캘리와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다. 그 시간이 너무도 편안하고 좋았다. 우리가 꿈꾸던 여행의 묘미, 한가로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만춘서점에서 책과 노트, 음악 레코드, 티셔츠를 샀다. 함덕 맛집 순옥이네명가에서 먹은 순옥이네물회, 전복물회, 성게미역국 맛은 최고였다. 역시 여행의 기쁨은 음식이다.

일박이일, 아쉬운 여행을 마치고 다시 목포로 향한다. 기분 좋게 바람이 분다.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형벌이자 위안인가?” 예전에 혼자 집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 썼던 글이다. 지금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떠나 돌아온 길이라서 위로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살면서 다친 마음에 약을 발라주고 아픈 구석을 감싸 안아주는 관계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똑같은 길을 걸어도 감동할 줄 알고, 매일 신비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시시락락 잘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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