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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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 땅!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5.0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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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조선 명종 때 소재 노수신은 머나 먼 남쪽 진도로 유배를 간다. 소재가 진도 금골산을 지나며 목격한 것은,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논으로 변한 그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왜구(일본 해적인지 남아시아의 해적인지 명확하지 않다)들이 우리 양민을 노략질하고 학살하여 쪽빛이어야 할 바다가 피멍이 들었음이다. 금골산 아래에는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절터를 필자의 모교가 차지하고 있다. 산을 더듬어 반대방향으로 하산하면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고인돌은 어린 시절에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그땐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 또한 천천히 걸으면 보이는 것 중 하나인 모양이다. 아니면 내 삶이 그리 되었을 수도 있다. 진도에는 이 고인돌 외에도 몇 개의 고인돌이 더 남아있다. 고대인이 살았던 흔적이다. 가까운 해남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진도에도 석기시대인이 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제주에서 처음 본 그 놈은 유난히 눈이 튀어 나오고 주먹만한 코가 얼굴의 전부인 양 우스꽝스러웠다. 당시에는 제주도에 왜 돌하르방이 있는지 달리 의심하지 않았다.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이란 책을 아주 오래전 읽고 난 후 고고학에 대한 관심과 그 놈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적도해류와 북으로 흐르는 흑조해류를 타고 칠레나 사모아, 필리핀 등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것들이 제주에서 발견된다. 하멜이 제주에 표류한 것이 우연이 아닌 문명교류통로 중 하나의 지류였던 셈이다. 우리 한민족은 기마민족의 후예라고 배웠다. 그런데 쌀, , 밥 등 드라비다어의 유산이 한국어에 산재해 있고 인도에도 제주도식 고인돌이 있다는 김교수의 글은 내 머리를 온통 들쑤셔 놓았다. 김교수의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에는 아유타국의 허황옥이 가락국의 왕비가 되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남방에서 오신 가무잡잡한 분이 우리 선조 중 한 분이 되셨던 것이다.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민족이 한반도의 지배계급이 되면서 쌀농사를 주로 하던 남방계 민족은 세월이 쌓이면서 고향을 잊고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을까?

본란에서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을 언급한 적이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고 고고학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그땐 몰랐다. 당시만 해도 슐리만을 어릴 적 꿈을 이룬 훌륭한 인물로 알고 있었다. 최근, 유라시아를 누비고 다닌 강인욱 교수의 고고학 여행을 읽으며 슐리만에 대한 시각을 교정할 수 있었다. 슐리만은 헤로도토스가 쓴 신들의 역사를 인간의 역사로 만들었다. 빛나는 치적이다. 그런데 발굴 현장에서 수집한 프리아모스의 황금유물을 자신의 아내 몸에 걸어 주었다. 위험천만한 일을 한 셈이다. 황금에 눈이 멀어 문화층을 파괴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유화했다. 고고학자들은 죽은 자들과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 유적지에 묻혀 있었던 고대인은 슐리만의 치기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방자하다고 했을까? 고고학이 인간학이요 인류학인데 이렇듯 고고학자답지 못한 행위를 하고도 그는 평생을 반성하지 않았다. 이는 품격의 문제를 떠나 고고학에 약간의 흥미를 갖고 있는 비전문가가 판단해도 너무나 중차대하다.

최근 경주 월성의 성, 해자를 비롯한 신라유적 발굴조사소식을 지면으로 접했다. 월성 축조는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앞서 허황옥에 얽힌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전한다. 삼국유사에는 건국신화를 비롯한 설화, 민담 등이 많은데 후대사람들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야기 수준으로 묻혀간 셈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된 트로이목마는 오랜 세월 신화로 치부되었다. 슐리만에 의해 신화가 아닌 역사가 되었듯이 삼국유사 기록도 임자(?)를 만나면 역사화되지 말란 법이 있나? 바로 월성 사적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발견된 토우 중에 터번을 쓴, 눈이 깊은 아이도 있다는 것이다. 상술에 능했던 페르시아인들 모습이다. 경주는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다. 이곳에서 서역인의 흔적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동서문물의 교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탄소동이원소측정이나 3D 스캔 등 ˹현대˼ 과학이 상상의 고고학에 일조를 하고 있다. 역사는 과학을 강화시켜 주고 과학은 역사를 복원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월성 발굴조사소식은 나로 하여금 주제넘는 짓을 하게 만들었다. 고고학에 관심 정도만 가지고 있는 필자가 주제넘게 이런 주제로 글을 써 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주제 넘었다. 고고학은 어쩐지 본인과는 거리가 먼 학문 정도로 여기어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전문가 인체 할 수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써 보자고 다짐했다.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갖고있는 분들에게 이것이 생각보다 흥미로운 분야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뜻밖의 재미를 공유하고 싶은 심정으로 시작했다. 유적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는 방식이 꼬숩다. 나주를 비롯한 고대 마한땅에서 독무덤이 다수 발굴된다. 왜 하필 독무덤일까? 항아리가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했기 때문이란다. 죽어서도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듯 구부려 넣은 독무덤이야말로 무덤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강인욱교수는 말한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고고학이 말이다. 오늘 확실히 주제 넘는 짓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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