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고독을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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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고독을 사랑하는 법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5.1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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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지쳐 쓰러진 병약한 영혼에 대해 말한다. 사연 많은 이야기들은 희고 가느다란 손을 뻗쳐 내게로 향한다.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보라고,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빛을 원하는 손들은, 저들에게 꼭 필요한 구원을 반드시 그러쥐겠다는 열망으로 내 옷가지를 붙들었다. 나는 그 손들을 붙잡을, 뿌리칠 여력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도 지쳐,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빛들은, 그 지친 영혼들은 끊임없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제발, 내 얘기 한 번만, 들어보라고.

익숙지 않아 어려웠을 뿐이다. 세상은, 삶은, 묻어 두었던 희망을 기어코 파냈다. 내려놓으리라고 다짐했는데, 또 어떤 날은 어느 중독자의 밤처럼 자꾸만 꿈을 상기시켰다. 내 바람은 그저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었는데, 그 내려놓음이 이제 더는 내려놓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내가 언젠가 당신을 사랑했을 때, 우리가 영원히 이별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을 때, 그때 우린 그 약속이 언제고 변질될 수 있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변함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런 알량한 약속 따위로 우리 사이를 메어두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 영혼들은, 그 스러져가는 빛들은, 자꾸만 내 몸을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면서, 아직 벌어지지도 않을 삶들을 읊조렸다.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넌 평생 외로울 거라고, 평생을 고독 속에 썩어갈 거라고, 그렇게 쓸쓸히 죽게 될 거라고. 그 비루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여태껏 날 지옥으로 몰아왔던 것을, 나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고독하게 죽어갈 말년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시선이 그득 묻은 옷을 벗어던지고, 그 옷을 붙잡아 끌어내리는 야윈 영혼들의 손을 뿌리쳤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왜 아직 벌어지지도 않을 미래를 신경 쓰느냐고, 어떻게든 살아도 된다면 지금 선택에 집중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 목소리는, 빛이라고 착각했던 수많은 손들을 뿌리치고 나서야 들렸다. 내 내면의 깊은 심해에서, 공기방울 속에 따뜻하게 담겨 있던, 침잠한 내 영혼의 입김에서.

누구도 사유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이제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여태 나를 모르고 살았다. 내 지친 육신을 타인의 어깨에 기대야지만 진정한 위로를 받는 줄 알았다. 고독이라는 건, 내 주변에 기댈 사람이 없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고독은 언제고 내 곁에 있었다. 내가 홀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쟁통 속에도 고독은 존재했다. 나는 늘 고독했다. 그러니, 말년에 대한 고독을 구태여 지금에까지 끌어오고 싶지 않다. 고독을 고독으로 인정하게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고독을 사랑할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라는 사람은 사실, 꾸며진 ''일지도 모른다. 산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다를 좋아하던 것처럼. 추운 겨울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겨울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어두운 밤이 그저 무서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밤을 사랑하고 있던 것처럼. 나는 한결같은 것이 아니라, 기분과 감정에 따라 언제고 들쭉날쭉하고 있었다는 걸. 모든 손들을 뿌리치고 나서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게 아니라, 고독하게 혼자 해내는 일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어느 날 훌쩍 여행을 떠나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세상에 끼워 맞춰 사느라 속앓이를 했던 마음은 온종일 눈물을 쏟아냈다. 원망도, 분노도, 자책도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맴돌고 맴돌았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다. 이제야 내 마음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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