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박찬웅 칼럼니스트] 여름의 벗 :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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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박찬웅 칼럼니스트] 여름의 벗 : 맥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05.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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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요즘 날씨에 일교차가 심해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많이 남아있지만 한낮에는 제법 뜨거운 해살이 강한 5월이다. 곧 여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여름이면 바다, 산과 계곡, 수박과 참외, 휴가 같은 단어들이 떠올리지만 나와 같은 주당들에게는 여름하면 시원한 맥주가 가장 앞자리에 서지 않을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은 단연 맥주다. 2019년 통계에 따르는 세계 술 판매액에서 2위는 소주와 같은 증류주(3880억 달러), 3위는 와인(2980억 달러)을 합한 것 보다 많은 약6643억 달러로 맥주가 1위를 차지할 만큼 세계인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맥주가 이렇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다른 술에 비해 값이 싸고 낮은 알코올 도수로 인해 부담감 없이 마실 수 있으며, 계절에 상관없이 간단한 설비로 어디서나 단순한 재료로 제조가 가능하다고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맥주는 언제부터 마셔왔을까. 맥주 제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슈메르인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점토판에서 발견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수메르인 들은 우리가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여름에 음료로 마시는 것처럼 보리 가루를 물에 타서 발효시킨 후 여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침전물이 없는 위쪽의 맑은 부분만 갈대를 이어 만든 빨대를 꼽아서 빨아 마셨다고 한다. 주조방법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막거리나 동동주와 비슷한 방식이다. 이를 시카루(sikaru)라고 했는데 이를 기록에 의한 최초의 맥주 주조법이다. 당시에는 한 술 항아리에 갈대빨대를 함께 꼽아 마시면서 노닥거리는 것이 사교의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집트로 전래되어 이집트에서도 맥주를 마셨는데. 피라미드건설 기록에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맥주와 빵, 마늘을 배급했었다고 한다, 따라서 맥주 제조법 역시 와인 제조법과 마찬가지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시작되어 이집트를 거쳐 유럽 각지로 전파되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남부지역에는 포도주, 독일과 체코, 폴란드 같은 중북부지역은 맥주, 러시아와 스코틀랜드 같은 추운 북부지역은 보드카나 위스키 같은 증류주가 지역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 잡았다, 중세유럽에서는 일반 개인보다는 봉건영주로부터 주조권을 허락받은 수도원에서 맥주나 포도주, 약초주를 제조. 판매하였는데 지금도 그 정통이 내려와 유럽의 유명 맥주와 포도주중에는 수도원을 원조로 하는 메이커들이 많다.

우리가 우유 광고 때문에 잘하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맥주의 역사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 전까지 맥주는 발효균을 살균하지 않은 생맥주였으나 루이 파스퇴르는 저온 살균법을 개발함으로써 유통기한이 길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오늘날과 같은 병에 담긴 병맥주맥주를 맛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맥주가 있었다. 물론 우리가 지금 마시고 생각하는 그 맥주가 아닌 다른 맥주이지만 재료가 보리라서 보리술, 맥주(麥酒)로 이름은 같았다. 영조실록에서도 흉년이 들었는데 백성들이 맥주를 만들어 마시니 술 제조를 금한다고 기록이 있다. 이 맥주가 대체 어떤 맛인지 산가요록에 제조법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물론 현대의 맥주와는 다른 보리로 빚은 청주와 비슷한 술이라고 한다. 그 후 서양의 맥주는 유럽식민열강들의 침략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했을 때 강화주민이 맥주병을 한아름 안고 찍은 사진기록이 남아있다. 1887년에는 영국해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남해의 거문도를 2년간 불법 점령한 거문도 사건 때도 거문도주민들에게 맥주를 줬다고 한다. 그 후 맥주는 삐루(ビール)’라는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때까지 상류층들이나 마시는 극소수의 사치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맥주를 생산하게 된 것은 1933년 일본 자본이 설립한 '조선맥주''소화기린맥주'가 생산하면서부터이다. 두 회사는 8.15 광복 후 미군정이 관리하다가 민간에 불하되면서 '조선맥주'는 크라운맥주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맥주가 되었다. 이것이 각각 후대의 하이트맥주와 OB맥주로 이어지고 있다.

길고 긴 팬데믹의 시대를 뒤로 하고 그 흉악한 병균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엔데믹 시대가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과 걱정을 지워버리고 살아가기에는 힘든 우리네 소시민들에게 한잔에 시원한 맥주가 우리에게 큰 힘을 주는 여름의 큰 벗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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