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원-신도심 균형발전이 숙제
목포 도시화, 100년을 말한다
1897년 개항한 근대 도시 목포는 일본의 경제적 침략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이 첨예하게 맞서는 등 근현대사의 굴곡이 깊게 패어있는 곳이다. 식민지시기에는 전국 6대 도시에 들어갈 만큼 급성장을 보이는 등 목포지역의 도시화 과정은 한국근대사의 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목포라는 ‘지명권’을 획득한 이후 본격적인 도시화가 이뤄진 개항 전후부터 전남도청 이전으로 전남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가는 현재까지 목포의 도시 형성과정을 시대별로 추적해 조명해본다.<편집자 주>
■ 1980년대 이후의 도시화8
올해로 개항된 지 125년. 침체의 늪에 발목 잡힌 목포는 여전히 발전이 뎌디다.
지난 100년간 목포의 성장과 좌절을 함께 누렸던 목포 원도심은 하당지구과 옥암지구 등의 신도심 개발로 인구 유출이 심화되면서 지난 10년간 인구가 30% 이상 감소했고 노령화 비율이 급속히 진행되는 등 쇠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이후 조성된 원도심은 도로폭 협소, 도로체계 복잡, 주차시설 부족 등 생활편익 시설이 취약해 하당 및 옥암지구 등 신도심이 만들어지면서 인구유출이 심해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택지가 턱없이 부족했던 목포는 1960년대부터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는 1980년대에 들어 전성기를 이루었다. 주택지 조성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된 것도 이 시기였다.
먼저 제1지구인 제1토지구획 정리사업은 용당동, 산정동 일부에 1975년 1월 30일 사업계획을 수립해 같은 해 5월 20일 착공, 1984년 12월 31일 완공했다. 죽산지구는 죽교동, 산정동, 대성동, 연산동 일부에 1980년 5월 20일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이듬해 1981년 11월 23일 착공했다. 용해지구는 산정동, 용당동, 이로동 일부에 죽산지구와 같이 계획을 수립해 착공했다.
이러한 택지조성사업으로 저렴한 비용을 들여 택지를 개발하였고 비교적 정연한 시가지를 조성할 수 있었으며 지번 정리 등을 통해 개발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1983년 8월에는 목표연도 2001년, 계획인구 45만을 상정한 기본계획(안)을 수립해 1984년 9월 13일 확정하는 등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
80년대 초, 유달산과 갓바위공원이 집중 개발됐다. 유달산 공원개발을 전국 최초로 범시민적으로 개발하는 운동을 전개해 1981년 12월 12일 유달산공원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본격적인 공원개발을 추진했다. 1983년까지 불량주택을 이전하고 1984년 순환도로를 개설 하였으며 유달산공원개발계획(1982. 2)과 갓바위공원개발계획(1984. 1)을 수립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도시개발 전문가들은 “목포라는 도시가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은 2차 산업 및 항구의 발달인데 목포는 1980년이 되기까지 이 두가지에서 모두 상대적으로 실패했고 그로 인해 시세권역도 축소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80년대 말부터 추진된 하당 신도심 개발사업은 인구 유입이나 도시 균형발전보다는 원도심을 쇠퇴의 늪에 빠트렸다.
하당 신도시 개발사업은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목포시가 1989년부터 추진했다. 목포시는 지역 내 행정구역 면적이 협소해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판단 아래 대규모 택지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하당 신도시 개발사업은 1, 2단계로 나눠 추진됐는데 하당지구 278만7000㎡ 면적에 계획인구 6만명을 목표로 진행된 1단계는 1989년 12월 착공해 1996년 11월 마무리됐다.
2단계는 매립지구 사업으로 94년 2월에 시작돼 99년 9월 완료됐으며 68만8000㎡에 계획인구는 1만2000명이었다.
택지조성사업 완료 뒤 2003년까지 준주거 및 주거용지, 상업용지 등이 단계적으로 분양돼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하당신도시는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서 신흥동, 부흥동 등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됐다.
하당 신도심 개발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했다. 땅이 팔리지 않아 당초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 무리한 사업추진이라는 지적도 일었다. 목포시는 89년부터 95년까지 하당지구와 매립지구 4백21만㎡를 택지로 개발, 인구 1백만명의 신도심을 건설하고 1천억원의 개발이익을 시 발전에 투자하기로 했으나 1차사업인 하당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정부의 부동산투기 억제 정책과 경기침체가 맞물려 시가 매각하기로 한 75만9천여㎡ 가운데 2년 동안 겨우 50%정도만 팔리는 부진을 보이기도 했던 것.
그러나 이후 원도심 상권이 하당 신도시로 대거 옮겨오면서 도심 공동화가 초래되고, 유흥가가 밀집해 도시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받았다.
원도심이 본격적인 쇠퇴기에 들어 선 것은 하당 신도심 개발 이후이다.
현재 목포시에서 '원도심'에 속하는 지역은 용당1동, 연동, 산정동, 원산동, 대성동, 목원동 등 총 16개 동이다. 면적으로는 17.56㎢로 목포시 전체 면적(49.41㎢)의 35.5%, 인구는 14만9867명(2008년 12월 현재)으로 목포시 전체 인구(24만5651명)의 61%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97년 원도심에는 18만8440명이었는데 2005년 15만8163명, 2008년 12만9867명 등으로 감소 추세다. 같은 기간 목포시 전체 인구는 25만178명, 24만2988명, 24만5651명으로 소폭 감소했다가 다시 소폭 상승으로 돌아섰다.
이처럼 목포시 전체 인구는 미약하나마 상승 추세를 보이는 반면 원도심은 계속해서 줄어들자 '원도심 활성화'가 목포 발전의 최대 숙제로 손꼽히고 있다.
이를 위해 목포시는 지난 2006년 1월 16일 전국 최초로 '원도심 활성화 지원조례'를 제정, 공포했다. 원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고 원도심 기능증진과 상권 회복을 위해 각종 행ㆍ재정적 지원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목포시 관계자는 "원도심이 살아야 목포시가 살아나기 때문에 원도심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원도심을 개발하는 부서도 계에서 과로, 과에서 국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는 등 시정 핵심 사업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